The Infinity Machine: Demis Hassabis, DeepMind, and the Quest for Superintelligence
인피니티 머신: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그리고 초지능을 향한 탐구
 
지은이 : Sebastian Mallaby
출판사 : Penguin Press
출판일 : 202603








AI 패권은 누가 설계하는가

[Key Message]
* AI 경쟁의 승부는 성능이 아니라 설계권에 있다. 누가 더 똑똑한 모델을 만드느냐보다, 누가 미래의 지식 질서와 판단 환경의 표준을 먼저 장악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 딥마인드의 이야기는 천재 한 사람의 성공담이 아니다. 그 서사 안에는 자본, 과학, 플랫폼, 국가 전략이 한곳으로 몰리며 새로운 권력이 형성되는 과정이 압축돼 있다.

* AI의 진짜 충격은 서비스가 아니라 지식 생산의 방식에 있다. 기계가 인간의 일을 돕는 수준을 넘어, 연구와 발견의 속도 자체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는 점이 더 본질적인 변화다.

* 앞으로의 핵심 전장은 혁신의 속도와 안전의 통제 사이에서 열린다. 더 빨리 상용화하려는 압박과 더 엄격하게 위험을 관리하려는 요구가 충돌하면서, AI 경쟁은 곧 규칙을 정하는 싸움이 된다.

* AI 패권은 많이 쓰게 만드는 힘보다 벗어나기 어렵게 만드는 힘에서 완성된다. 한번 사회가 특정한 도구와 표준, 판단 방식에 익숙해지면, 기술의 우위는 시장점유율을 넘어 구조적 의존으로 굳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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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AI 경쟁은 더 좋은 기능을 먼저 내놓는 기업들의 속도전처럼 보이지만, 진짜 승부는 그보다 훨씬 깊은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누가 더 강한 모델을 만드느냐보다, 누가 미래의 지식 체계와 산업 질서, 인간의 판단 환경을 먼저 설계하느냐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딥마인드와 데미스 허사비스를 둘러싼 서사는 그래서 기술 혁신담이 아니라, 권력과 질서 재편의 기록으로 읽힌다.

승부의 무대가 바뀐 시대
AI를 둘러싼 경쟁은 한동안 연구실의 성과와 스타트업의 혁신 속도로 설명되곤 했다. 누가 더 놀라운 데모를 만들었는지, 누가 더 많은 사용자를 끌어모았는지, 누가 더 높은 성능을 증명했는지가 핵심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제 AI는 더 이상 하나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니다. 연구와 산업, 금융과 국방, 교육과 의료, 콘텐츠 생산을 가로지르는 범용 인프라로 옮겨가고 있다. 이 단계에 이르면 경쟁의 의미도 달라진다. 시장에서 누가 먼저 앞서느냐보다, 사회가 문제를 풀고 판단을 내리고 지식을 생산하는 방식 자체를 누가 다시 정의하느냐가 더 중요해진다. AI가 기술 산업의 일부를 넘어 세계 권력과 연결된 문제로 거론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세계 권력의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redrawing the map of global power)”는 말은 과장이 아니라, AI가 경제적 효율을 넘어 국제 질서의 구조를 흔드는 변수로 올라섰다는 뜻에 가깝다.

이 변화는 반도체나 전력망을 이해하는 방식과도 닮아 있다. 처음에는 더 빠른 칩, 더 효율적인 네트워크, 더 좋은 기계의 문제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은 공급망과 국가 안보, 산업 정책과 지정학의 문제로 확장된다. AI 역시 같은 길을 걷고 있다. 검색, 번역, 추천, 자동화, 연구 보조, 신약 개발, 과학 계산은 표면에 드러난 기능일 뿐이다. 그 아래에서는 누가 더 많은 계산 자원을 확보하는지, 누가 더 많은 인재를 끌어들이는지, 누가 플랫폼을 기반으로 AI를 일상에 깊숙이 심는지, 누가 규칙과 표준을 먼저 장악하는지가 진짜 승부를 좌우한다. AI를 선도하는 기업은 단지 시장점유율을 얻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사람들이 일하고 배우고 판단하고 연구하는 방식의 기본 리듬까지 바꾸게 된다.

그래서 이제 핵심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누가 더 똑똑한 기계를 만들 것인가가 아니다. 그 기계가 사회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쓰이고, 어떤 방식으로 신뢰받고, 어떤 방식으로 규제될 것인가를 누가 설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AI가 일상적인 업무 도구로 자리 잡을수록, 그것을 만든 기업은 단순한 기술 공급자가 아니라 사실상 새로운 규칙의 설계자가 된다. 어떤 정보가 먼저 보이고, 어떤 선택지가 추천되며, 어떤 판단 기준이 효율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지가 모두 기술과 함께 이동하기 때문이다. 결국 AI 경쟁은 성능 경쟁인 동시에 문법 경쟁이다. 세상의 사고 습관을 누가 먼저 표준화하느냐의 문제다.

천재의 전기가 아니라 플랫폼 권력의 역사
많은 사람들은 데미스 허사비스를 먼저 개인의 서사로 기억한다. 어린 시절 체스 신동이었다는 이야기, 게임 개발 경험, 신경과학과 AI를 넘나든 이력, 그리고 딥마인드의 공동 창업자라는 경력이 그의 이름에 강한 인상을 더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개인의 비범함 그 자체가 아니다. 왜 거대한 자본과 최고 수준의 연구 인력, 그리고 플랫폼 기업의 이해가 특정한 인물과 조직 주변으로 집중되었는가를 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 그 지점부터 AI는 한 천재의 성공담이 아니라, 자본과 인재, 연산 자원과 과학적 명분, 기업 권력과 국가 전략이 서로 얽히는 구조의 이야기로 바뀐다. 허사비스가 “특별한 경우로 인정받는다(is recognized as a special case)”는 표현도 그래서 의미가 있다. 그는 단순한 스타 창업자가 아니라, AI 시대의 여러 긴장과 기대가 한 사람에게 응축된 사례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 짧은 문구 안에는 기술자와 기업가, 과학자와 권력 설계자의 성격이 동시에 겹쳐 있다.

딥마인드가 결정적인 이름이 된 데에는 상징적인 장면도 컸다. 알파고가 보여준 충격은 단지 바둑 프로그램의 발전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직관과 숙련, 오랜 훈련을 통해 쌓인 감각이 기계적 계산 앞에서 얼마나 빠르게 상대화될 수 있는지를 전 세계에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이 장면은 이후 AI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바꾸어 놓았다. AI는 더 이상 반복 업무를 대신하는 소프트웨어가 아니었다. 인간만의 고도의 판단이 필요하다고 여겨졌던 영역에도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 존재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2016년의 알파고 대국은 그래서 기술 데모가 아니라, 인간 사회가 AI를 상상하는 문턱 자체를 바꾼 사건으로 남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변화는 그 다음에 이어졌다. 알파폴드처럼 과학 연구의 난제를 푸는 성과가 등장하면서, AI는 게임의 세계를 넘어 지식 생산의 방식 자체를 흔들기 시작했다. 인간 연구자가 오랜 시간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반복하며 다가가던 문제에, AI가 전혀 다른 속도와 방식으로 개입하는 장면이 현실이 된 것이다. 이때부터 AI 기업은 더 이상 앱을 만드는 회사로만 볼 수 없게 되었다. 과학의 방법을 바꾸는 회사, 지식 생산의 리듬을 다시 쓰는 회사가 되기 시작했다. 발견의 속도를 쥔다는 것은 단지 돈을 버는 문제가 아니다. 누가 미래의 연구 속도를 좌우할 것인가의 문제이며, 결국 경제력과 군사력, 산업 주도권과도 이어진다. “기술, 산업, 세계 권력을 다시 만드는 힘(the forces reshaping technology, industry, and global power)”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업화와 안전이 부딪히는 지점
오늘의 AI 경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은 성능 향상 자체가 아니라, 속도와 통제 사이의 충돌이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시장을 빼앗길 수 있고, 조금이라도 성급하면 사회적 비용이 커질 수 있다. 이 두 압력이 동시에 작동하는 순간부터 AI 기업은 더 이상 중립적인 기술 회사로 남아 있을 수 없다. 출시 시점, 안전 기준, 접근 범위, 공개 수준, 내부 검증 절차 같은 결정들이 모두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규칙이 되기 때문이다. “과연 한 사람이 개발 방향을 조정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반복해서 제기되는 것도 그래서다. 문제는 한 사람의 리더십이 강하냐 약하냐가 아니다. AI처럼 파급력이 큰 기술이 기업 내부의 판단만으로 움직여도 되는가라는 더 큰 질문이 그 뒤에 놓여 있다.

AI 안전 논쟁은 겉으로는 도덕의 언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권력의 언어이기도 하다. 안전을 앞세우는 쪽은 더 신중한 개발과 더 강한 통제를 요구할 수 있다. 반대로 혁신과 개방을 내세우는 쪽은 과도한 규제가 발전을 가로막는다고 주장할 수 있다. 두 입장은 모두 그럴듯해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시장 지위와 자원 격차, 국제 경쟁 구도와 긴밀히 얽혀 있다. 어떤 기준이 공식 표준이 되느냐에 따라 뒤따르는 기업과 국가들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도 달라진다. 결국 안전은 윤리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패권의 문제다. AI 시대의 규범을 누가 먼저 정의하느냐는, 시장에서 누가 우위를 점하느냐만큼 중요하다. “윤리와 야망이 충돌하는 최전선(ambition colliding with ethics at the frontier of machine intelligence)”이라는 표현은 이런 긴장을 압축해 보여준다.

더 흥미로운 점은 상업화와 안전의 갈등이 기업 내부의 논쟁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AI는 이미 국가 전략과 규제 체계, 연구 인프라와 군사 기술, 교육 정책과 산업 구조 속으로 깊이 들어와 있다. 따라서 어떤 회사가 더 공격적으로 상용화하느냐는 단순히 소비자 서비스 경쟁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전체의 템포를 정하는 일이 된다. 한 번 빠른 출시가 기본 규범이 되면 다른 기업과 국가도 그 속도에 맞추도록 압박받는다. 반대로 강한 안전 기준이 먼저 제도화되면, 기술의 상용화는 조금 느려질지라도 방향 자체는 달라질 수 있다. 이처럼 AI의 시간표를 누가 정하느냐는 결국 질서의 시간표를 누가 정하느냐와 같다.

연구실에서 지정학으로 넘어가는 순간
AI가 한 나라의 미래를 바꾸는 기술이 된 이유는 성능 그 자체보다, 그것이 요구하는 조건들 때문이다. 거대한 연산 능력, 안정적인 전력, 첨단 반도체, 클라우드 인프라, 고급 연구 인력, 축적된 데이터, 제도적 허용성, 지속적인 자본 투입이 함께 필요하다. 이 말은 곧 AI 경쟁이 더 이상 소프트웨어 기업 몇 곳의 싸움이 아니라는 뜻이다. AI는 산업 정책이고, 에너지 정책이며, 교육 정책이고, 동시에 안보 정책이다. 딥마인드나 오픈AI, 구글 같은 조직이 기술 회사이면서도 사실상 지정학의 노드처럼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을 바라본다는 것은 특정 브랜드를 보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 질서의 접점을 바라보는 일에 가깝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AI 기업의 가치는 서비스 매출이나 기업 평가액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누가 미래의 연구 속도를 결정하는가, 누가 과학과 산업의 결합 지점을 장악하는가, 누가 국가와 기업의 의사결정 도구를 표준화하는가다. AI를 먼저 일상에 심는 쪽은 단지 사용자를 확보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사회의 판단 구조 자체에 관여하게 된다. 업무 자동화, 연구 설계, 금융 분석, 공공 행정, 군사 보조 체계, 교육 콘텐츠 생성이 모두 같은 기반 위에 놓이면, 그 기반을 만든 회사와 국가는 이전 시대와는 다른 영향력을 갖게 된다. AI 패권은 사용량의 문제가 아니라 의존성의 문제다. 사회 전체가 특정한 계산 방식과 특정한 도구에 익숙해질수록, 그 구조를 만든 쪽의 힘은 점점 더 커진다.

한국 같은 중견 기술국가에 이 문제는 더욱 현실적이다. 우리는 종종 AI를 반도체 경쟁이나 서비스 경쟁으로만 좁혀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생태계에 올라타고, 어떤 표준을 받아들이며, 어떤 규범 형성 과정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느냐다. AI 시대의 종속은 단지 뒤처지는 문제가 아니다. 남이 만든 도구를 사용하는 수준을 넘어, 남이 설계한 판단 환경 속에서 일하고 배우고 결정하게 되는 문제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빠른 도입만이 아니다. 인프라와 인재, 전력과 규제, 공공 전략과 데이터 거버넌스, 국제 협력을 함께 보는 장기적 시야가 필요하다. AI는 이제 어느 한 부처의 산업 과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운영 감각을 시험하는 주제가 되고 있다.

인간을 닮은 기계보다 더 중요한 질문
많은 사람들은 AI를 논할 때 먼저 인간과 기계의 능력 비교에 시선을 둔다. 누가 더 잘 쓰는지, 누가 더 빨리 푸는지, 누가 더 정확한지 같은 질문들이다. 그러나 지금 더 중요한 문제는 기계가 인간을 얼마나 닮았느냐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 사회가 그런 기계의 존재를 전제로 자신을 어떻게 다시 짜고 있느냐가 핵심이다. AI의 진짜 충격은 인간과 경쟁하는 기계를 만들었다는 데 있지 않다. 인간이 사고하고 배우고 판단하는 환경 자체를 기계에 맞춰 조금씩 재구성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이 변화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누적될수록 더 강하다. 사람들은 이미 검색 결과의 배열에 익숙해지고, 추천 시스템의 논리에 순응하고, 자동 요약과 자동 생성의 편리함에 맞춰 일의 방식을 바꾸고 있다. 사회는 조금씩 기계가 잘 작동하는 방식에 맞추어 스스로의 리듬을 조정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다움의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인간이 더 많이 알고, 더 넓게 기억하고, 더 빠르게 계산하는 능력이 중요한 차이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런 기능은 이미 상당 부분 자동화의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앞으로 더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느냐보다, 누가 더 좋은 판단 기준을 유지하느냐가 될 가능성이 크다. 무엇을 기계에 맡기고 무엇을 인간에게 남길 것인가, 무엇을 효율의 문제로 볼 것인가, 무엇을 인간적 책임의 문제로 볼 것인가가 핵심이 된다. AI 시대의 인간다움은 기능의 우월성이 아니라, 책임과 의미, 맥락과 가치의 차원에서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결국 미래를 가르는 질문은 하나다. 누가 더 강한 인공지능을 만들 것인가가 아니다. 누가 그 인공지능이 사회에 스며드는 방식, 신뢰받는 방식, 규제되는 방식, 인간의 일상과 제도 속에 배치되는 방식을 설계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AI 시대의 권력은 기술 그 자체에 있지 않다. 기술을 둘러싸고 형성되는 표준과 의존, 정당성과 속도, 그리고 질서에 있다. 그래서 딥마인드와 허사비스를 둘러싼 이야기는 한 기업의 성장담으로 읽기에는 너무 크다. 그것은 21세기 권력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 그리고 인간 사회가 어떤 기준을 지키며 그 이동을 맞이할 것인지를 묻는 사례에 가깝다.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이야기(a defining story for our era)”라는 평은 바로 그런 뜻으로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