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Is Free Speech?
표현의 자유란 무엇인가: 위험한 사상의 역사
 
지은이 : Fara Dabhoiwala
출판사 : Allen Lane
출판일 : 202503








[What Is Free Speech? The History of a Dangerous Idea]


"표현의 자유는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표현의 자유는 검열에 맞서 획득한 보편적 권리로 기억되지만, 실제 역사는 훨씬 불규칙하고 모순적이었다. 자유를 선언한 사람들은 여성과 노예, 식민지 주민의 발언을 배제했고, 억압받던 사람들은 다시 그 자유의 언어를 빼앗아 권력에 맞섰다. 인쇄기에서 소셜미디어에 이르기까지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핵심 질문은 ‘말할 수 있는가’를 넘어 ‘누구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가’에 있다.

[Key Message]
* 표현의 자유는 처음부터 완성된 보편적 권리가 아니라 정치적 갈등과 권력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역사적 제도다.

* 자유를 선언한 사람들은 여성과 노예, 식민지 주민을 배제했지만, 억압받던 사람들은 같은 자유의 언어를 권력에 저항하는 무기로 활용했다.

* 표현의 자유를 판단하려면 말할 수 있는 권리뿐 아니라 누구의 목소리가 더 크게 확산되고 누가 공론장의 규칙을 통제하는지 살펴야 한다.

* 디지털 플랫폼은 발언 기회를 확대했지만, 알고리즘과 자본이 주목을 불평등하게 배분하는 새로운 권력을 만들었다.

* 자유로운 사회는 모든 표현을 무제한으로 허용하는 사회가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말하고 권력의 확성기를 감시할 수 있는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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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처음부터 절대적이지 않았다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은 흔히 자유와 검열의 대립으로 설명된다. 국가는 시민의 발언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과 혐오·선동·허위정보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려면 일정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맞선다. 한쪽은 자유를, 다른 쪽은 책임을 앞세운다.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 표현의 자유는 두 가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어떤 사회도 모든 표현을 아무런 조건 없이 허용하지 않았다. 명예훼손과 협박, 사기와 위증, 군사기밀 유출과 시장 조작은 자유로운 발언이라는 이유만으로 보호되지 않는다. 법정에서는 증거와 절차를 따라야 하고, 학술지에서는 검증 가능한 근거가 요구된다. 언론에는 사실 확인과 정정의 책임이 있으며, 의회에도 발언의 형식과 범위를 정하는 규칙이 존재한다.

규칙이 있다고 해서 표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적절한 규칙이 있어야 표현이 지식과 판단을 만드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진실을 찾기 위한 토론, 권력을 비판하기 위한 정치적 발언, 예술적 상상력, 상업적 광고는 목적이 서로 다르다. 목적이 다르면 요구되는 자유와 책임의 조건도 달라진다.

표현의 자유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완전한 형태로 가지고 있던 자연 상태라기보다 사회가 특정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 온 제도에 가깝다. 자유로운 발언을 무엇을 위해 보장할 것인지,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허용할 것인지, 발언으로 발생한 피해를 누가 책임질 것인지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조정된 역사적 산물이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진실이나 정의, 평등, 민주주의보다 앞서는 절대적 권리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 관점에서는 발언에 대한 어떤 제한도 곧바로 검열로 간주된다. 하지만 표현 자체를 최상의 목적으로 격상시키면 발언이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지, 어떤 권력이 그 발언을 확산하는지, 사회적 약자가 실질적으로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지는 시야에서 사라진다.

표현의 자유가 언제나 같은 의미를 가졌다는 생각부터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익숙한 개념은 오래전부터 변함없이 이어진 보편적 원리가 아니었다. 서로 다른 시대와 사회가 각자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자유의 의미를 만들어왔고, 후대는 그 복잡한 과정을 하나의 영웅적인 진보 서사로 정리했다.

밀턴이라는 기원 신화
표현의 자유의 역사에서 존 밀턴의 《아레오파지티카》는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1644년에 발표된 이 글은 출판 허가제에 반대하며 사상의 자유로운 경쟁을 옹호한 고전으로 기억된다. 진실과 거짓이 공개적으로 맞서면 진실이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도 밀턴의 유산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밀턴을 현대적 표현의 자유의 창시자로 보는 해석에는 상당한 과장이 들어 있다. 그가 반대한 것은 모든 형태의 검열이 아니라 출판 전 허가제였다. 출판 이후의 처벌까지 부정한 것은 아니었으며, 자신이 위험하거나 그릇되다고 판단한 종교적 주장에 대해서는 관용적이지 않았다. 오늘날 생각하는 보편적 발언권과 그의 주장은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밀턴의 실제 입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후대가 그를 어떻게 기억했는가이다.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중심 가치로 자리 잡으면서 과거에도 동일한 원리를 주장한 위대한 선구자가 필요해졌다. 복잡하고 제한적이었던 주장은 보편적 자유를 선언한 문장으로 재구성됐고, 밀턴은 현대 자유주의의 계보를 정당화하는 상징이 됐다.

역사는 종종 현재의 가치에 맞춰 과거를 정돈한다. 오늘날 당연하게 보이는 권리가 오래전부터 일관된 철학을 따라 발전해 왔다고 생각하면 제도의 정당성은 강해진다. 하지만 이런 서사는 표현의 자유가 우발적인 정치 갈등과 이해관계, 기술 변화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가린다.

존 로크와 볼테르, 제임스 매디슨, 조지 오웰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자유의 영웅적 계보에 배치됐다. 이들이 자유로운 사상과 비판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각자가 생각한 자유의 범위와 적용 대상은 서로 달랐다. 그들의 주장을 하나의 직선 위에 놓으면 표현의 자유는 마치 완성된 원리가 점차 확장된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개혁과 후퇴, 배제와 탈취,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반복됐다.

표현의 자유의 역사는 철학자들이 원리를 발견하고 정치가들이 이를 제도로 옮긴 과정이 아니다. 기존의 종교적 관용론이 정치적 선전의 언어로 바뀌고, 출판업자의 이해관계가 시민의 권리와 결합하며, 특정 집단을 위해 만들어진 주장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무기로 변한 과정이었다.

인쇄혁명과 ‘카토의 편지’
현대적인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뚜렷한 모습을 갖춘 것은 18세기 초 영국이었다. 종교 갈등과 명예혁명을 거치며 왕권과 교회의 출판 통제가 느슨해졌고, 신문과 팸플릿, 정치 논평이 급속히 늘어났다. 인쇄소와 서점, 커피하우스는 정치적 정보와 소문, 논쟁이 교환되는 새로운 공론장이 됐다.

이 환경에서 언론인 존 트렌처드와 토머스 고든은 1720년부터 ‘카토의 편지’라는 일련의 글을 발표했다. 이들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정치적 자유를 지키는 핵심 조건으로 제시했다. 권력은 비판받지 않으면 부패하며, 공직자의 행동을 시민이 자유롭게 평가할 수 있어야 공공의 자유가 유지된다고 주장했다.

‘카토의 편지’의 혁신은 종교적 양심과 관용의 언어를 세속적인 정치적 권리로 전환했다는 데 있었다. 이전에도 진리를 탐구하거나 종교적 박해를 피하기 위한 자유가 논의됐지만, 트렌처드와 고든은 공공의 문제에 관해 발언하고 통치자를 비판하는 일을 시민의 권리로 내세웠다. 자유로운 표현을 소수 학자와 성직자의 특권이 아니라 정치 공동체를 유지하는 장치로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을 순수한 철학적 발견으로만 볼 수는 없다. ‘카토의 편지’는 당대의 정파 갈등과 부패 스캔들, 출판시장의 경쟁 속에서 탄생했다. 두 언론인은 특정 정치세력을 공격하고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자유의 언어를 사용했다. 권력에 대한 비판은 공공선에 대한 신념인 동시에 정치적 무기이자 출판 상품이었다.

자유로운 언론을 주장한 사람들도 모든 사람의 동등한 발언권을 상상하지 않았다. 이들이 전제한 시민은 주로 재산과 교육을 갖춘 유럽 남성이었다. 여성은 정치적 이성을 가진 독립적 발언자로 인정받지 못했고, 노동자와 빈곤층의 목소리도 공론장의 중심에서 배제됐다. ‘카토의 편지’는 방대한 자유의 철학을 펼쳤지만 그 안에서 여성의 경험과 목소리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더 큰 모순은 대서양 건너편에서 드러났다. 자유의 언어가 미국 식민지로 전파되던 시대에 노예무역과 노예제도 역시 확대됐다. 자유로운 시민의 권리를 강조하면서 사람을 소유하고 거래하는 질서는 유지됐다. 표현의 자유는 보편적 권리처럼 선언됐지만, 실제로는 인종과 성별, 재산에 따라 권리를 누릴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분했다.

인쇄혁명은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넓혔지만 발언 영향력을 평등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인쇄시설에 접근할 수 있고 출판 비용을 감당하며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계층이 공론장을 주도했다. 법적 검열이 완화돼도 교육과 재산, 사회적 신뢰가 불평등하다면 표현의 자유 역시 불평등하게 배분된다.

대서양을 건너며 변형된 자유
‘카토의 편지’는 영국보다 미국 식민지에서 더 강력한 생명력을 얻었다. 식민지의 정치가와 언론인은 영국 정부를 비판하고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데 자유의 언어를 활용했다. 권력에 대한 공개적 비판이 자유를 지킨다는 명제는 혁명적 정치문화와 결합했고, 미국 수정헌법 제1조의 사상적 토대 가운데 하나가 됐다.

벤저민 프랭클린과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매디슨을 비롯한 미국 건국기의 인물들은 언론과 정치적 발언을 공화국의 핵심 조건으로 보았다. 시민이 통치자를 감시하고 공적 문제를 토론할 수 없다면 공화정은 유지될 수 없었다. 의회가 언론과 발언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을 만들 수 없도록 한 수정헌법 제1조는 이러한 불신을 제도화했다.

그러나 미국의 건국자들도 자유의 모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비판 언론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자신을 공격하는 신문을 불편해했고, 보편적 권리를 선언하면서 노예제를 유지했다. 정치 공동체의 주체로 인정받은 사람은 주로 백인 남성이었다. 여성과 원주민, 노예에게는 건국의 자유가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았다.

프랑스혁명에서도 표현의 자유는 시민적 권리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인쇄물과 정치클럽, 거리의 연설은 구체제를 무너뜨리는 동력이 됐다. 하지만 혁명이 급진화하고 정치적 폭력이 커지자 새로운 권력 역시 반대파의 발언을 억압했다. 자유를 내세운 혁명정부가 자신의 존립을 위협한다고 판단한 표현을 처벌하는 모습은 자유와 권력이 얼마나 쉽게 자리를 바꾸는지 보여준다.

스웨덴을 비롯한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도 18세기 언론 자유를 제도화하려는 중요한 실험이 진행됐다. 정부 문서에 접근할 권리와 출판의 자유를 결합한 제도는 영미권과 다른 발전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정치체제가 변할 때마다 자유의 범위도 확대와 축소를 반복했다. 표현의 자유는 한 번 획득하면 영구히 유지되는 성취가 아니었다.

대서양 세계를 따라 이동한 자유의 개념은 각 지역의 정치적 필요에 맞게 변형됐다. 어느 곳에서는 왕과 교회를 비판하는 수단이었고, 다른 곳에서는 독립혁명의 정당성을 만드는 언어였다. 또 다른 곳에서는 새롭게 등장한 정부가 문명과 정당성을 과시하는 상징이 됐다. 동일한 단어가 서로 다른 제도와 이해관계를 담았다.

이러한 흐름은 표현의 자유가 하나의 철학에서 출발해 세계로 확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개혁은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낳았고, 특정 집단을 위해 만들어진 권리는 다른 집단에 의해 새로운 의미로 사용됐다. 표현의 자유의 역사는 계획된 진보라기보다 우발적인 변화가 누적된 역사였다.

제국의 자유와 식민지의 침묵
근대 유럽은 표현의 자유를 문명과 진보의 증거로 내세웠다. 하지만 같은 시기 식민지에서는 전혀 다른 규칙을 적용했다. 본국 시민에게 허용된 정부 비판이 식민지 주민에게는 선동과 반란으로 규정됐다. 보편적 자유를 말하는 제국이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발언을 차등적으로 통제했다.

영국령 인도는 이러한 이중 구조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영국은 자유로운 언론과 법치를 자국 정치체제의 우월성으로 선전했지만, 인도의 신문과 정치적 출판물에는 엄격한 규제를 가했다. 식민지 주민이 제국의 통치와 인종적 차별을 비판하면 공공질서와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로 취급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로운 토론이 진리를 발견하고 사회를 발전시킨다고 주장한 대표적인 사상가다. 잘못된 의견이라도 공개적으로 논박할 수 있어야 옳은 주장도 살아 있는 진리로 유지된다고 보았다. 반대 의견을 차단하면 진실조차 검증되지 않은 교리로 굳어진다는 논리는 현대 표현의 자유론에서도 강력한 근거로 남아 있다.

그러나 밀의 자유론에는 식민주의적 한계가 있었다. 그는 유럽 사회를 문명 발전의 앞선 단계에 놓고, 식민지 주민을 아직 자유로운 자기통치에 도달하지 못한 존재로 바라봤다. 자유는 보편적인 것처럼 제시됐지만 그 자유를 온전히 누릴 자격은 문명의 단계에 따라 구분됐다.

그렇다고 표현의 자유가 제국의 지배 논리로만 기능한 것은 아니다. 인도의 지식인과 언론인, 독립운동가들은 영국이 내세운 자유의 원칙을 역으로 활용했다. 영국이 자유로운 언론을 문명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면 인도인에게도 같은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제국의 자기 정당화를 위해 사용된 언어가 식민통치의 위선을 폭로하는 무기로 바뀌었다.

이 사례는 표현의 자유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자유의 언어는 강자가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할 수 있지만, 약자도 그 언어를 빼앗아 권력에 맞설 수 있다. 자유가 불평등한 기원을 가졌다는 사실과 자유가 해방의 도구로 사용됐다는 사실은 동시에 성립한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를 권력자의 구호로만 규정하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 억압적 정부 아래에서 부패를 폭로한 언론인,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고발한 활동가, 독재에 저항한 반체제 인사에게 발언의 자유는 생명과 직결된 권리였다. 자유의 역사적 위선을 밝히는 작업이 권리 자체의 중요성을 약화시키는 논리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아이디어의 시장과 자본의 확성기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며 자유로운 토론이 진실을 발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믿음은 ‘아이디어의 시장’이라는 개념으로 발전했다. 정부가 어떤 의견이 옳은지 결정하기보다 서로 다른 주장들이 공개적으로 경쟁하게 하면 시민이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 원칙은 권위주의와 정치적 탄압에 맞서는 데 강력한 역할을 했다. 당장은 불쾌하고 위험해 보이는 주장이라도 공개적인 반박을 통해 검증하는 편이 국가가 이를 금지하는 것보다 낫다는 믿음은 소수 의견과 반체제 사상, 언론 보도와 예술적 표현을 보호했다.

그러나 시장의 참여자들이 동등한 자원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아이디어의 경쟁도 공정할 수 없다. 자본과 매체를 보유한 집단은 자신의 메시지를 더 자주, 더 넓게 반복할 수 있다. 반대편에 형식적인 발언권이 있더라도 실제로 청중에게 도달하지 못한다면 자유로운 경쟁은 명목에 그친다.

20세기 후반 미국에서 수정헌법 제1조는 매우 강력한 법적 보호로 발전했다. 국가는 발언의 내용에 개입해서는 안 되며 혐오스럽고 모욕적인 주장도 직접적이고 임박한 위험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폭넓게 보호해야 한다는 기준이 확립됐다. 국가 검열을 막는 방어막으로서는 큰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국가의 간섭을 줄이는 것만으로 공론장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대규모 언론기업과 광고산업, 디지털 플랫폼이 정보의 유통을 통제하는 환경에서는 사적 권력도 국가 못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무엇이 보도되고 추천되며 반복 노출되는지를 결정하는 주체가 달라졌을 뿐, 발언의 가시성을 배분하는 권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소셜미디어는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발언할 수 있는 공간을 열었다. 과거에는 신문사와 방송국, 출판사의 문을 통과해야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지만, 이제 개인도 세계를 상대로 의견과 영상을 배포할 수 있다. 기존 언론이 외면한 문제를 사회적 약자가 직접 알리고 연대를 형성할 가능성도 커졌다.

하지만 발언 기회의 확대와 영향력의 평등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플랫폼에서 모든 게시물이 동일하게 노출되지 않는다. 추천 알고리즘은 이용자의 체류시간과 반응을 늘리는 콘텐츠를 우선한다. 분노와 공포, 충격을 유발하는 게시물이 신중한 설명보다 빠르게 퍼진다. 발언은 이용자가 하지만 주목은 알고리즘이 배분한다.

플랫폼 기업은 중립적인 통로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편집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어떤 콘텐츠를 삭제할지뿐만 아니라 무엇을 추천하고 보이지 않게 할지 결정한다. 이 과정은 공개적인 편집회의가 아니라 불투명한 알고리즘과 기업의 상업적 목표를 통해 이뤄진다.

표현의 자유를 강하게 주장하는 기술기업의 소유자가 동시에 플랫폼의 규칙과 알고리즘을 통제하는 상황은 현대적 역설을 드러낸다. 소유자가 규제를 비판하며 자유를 내세우더라도 자신의 판단으로 특정 발언의 가시성을 높이거나 낮출 수 있다면 그 자유는 중립적이지 않다. 표현의 자유라는 언어가 시민의 권리를 지키는 원칙인지, 사적 권력을 정당화하는 구호인지 구분해야 한다.

위험한 사상, 필요한 권리
표현의 자유가 권력과 자본에 의해 이용돼 왔다는 비판에는 강력한 반론이 따른다. 자유를 옹호했던 사람들이 위선적이었다고 해서 자유의 원리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존 스튜어트 밀에게 식민주의적 편견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공개 토론의 가치를 부정할 수 없으며, 미국 건국자들이 노예제를 용인했다는 사실도 수정헌법 제1조가 이후 소수자와 반체제 인사를 보호한 의미까지 지우지는 못한다.

역사적으로 표현의 자유는 권력자의 무기인 동시에 권력에 맞서는 약자의 무기였다. 제국은 자유의 언어로 자신을 문명화된 통치자로 포장했지만 식민지 주민은 같은 언어로 독립을 요구했다. 거대 언론기업은 언론의 자유를 상업적 권익을 지키는 데 사용했지만 탐사보도 기자와 내부고발자는 그 자유를 통해 국가와 기업의 부패를 폭로했다.

표현의 자유가 불평등하게 작동한다는 이유로 규제를 확대할 때도 신중해야 한다. 혐오와 허위정보를 막겠다는 명분이 정부 비판과 소수 의견을 억압하는 도구로 바뀔 수 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위험한지를 국가가 독점적으로 판정하면 자유는 빠르게 위축된다. 규제 권한을 선의의 정부만 행사한다는 보장은 없다.

반대로 어떤 제한도 인정하지 않는 절대주의 역시 공론장을 보호하지 못한다. 조직적인 허위정보와 협박, 반복적 혐오 선동이 타인의 발언을 위축시키고 민주적 판단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형식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같은 자유를 주더라도 자본과 기술을 가진 집단이 압도적인 확성기를 독점하면 실질적인 자유는 불평등해진다.

필요한 것은 자유와 규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자유가 작동하는 조건을 설계하는 일이다. 정부가 비판적 의견을 자의적으로 처벌하지 못하게 하고, 플랫폼에는 알고리즘과 광고 시스템의 투명성을 요구해야 한다. 규제 기준은 명확해야 하며 결정 과정과 이의제기 절차도 공개돼야 한다. 언론의 독립과 다양성, 시민의 미디어 이해력도 함께 강화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말할 수 있는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누가 발언 기회를 얻는가, 누가 더 크게 들리는가, 누가 침묵의 비용을 부담하는가, 누가 매체와 알고리즘을 통제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동시에 불완전한 역사와 오용 가능성만을 근거로 권리의 가치를 축소해서도 안 된다.

표현의 자유는 완성된 정답이 아니라 사회가 계속 조정해야 하는 긴장에 가깝다. 규칙이 없는 공론장은 강자의 영향력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확대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지나치게 통제된 공론장은 권력에 불편한 목소리를 제거하는 공간으로 변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이 두 위험 사이에서 자유의 목적과 한계를 끊임없이 다시 정해야 한다.

자유로운 사회는 말이 무제한으로 쏟아지는 사회가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말하고, 근거를 통해 다투며, 권력의 확성기를 감시할 수 있는 사회다. 표현의 자유는 가장 큰 목소리를 가진 사람에게 더 강한 확성기를 제공하는 원칙이 아니라, 아직 들리지 않은 목소리가 공론장에 도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권리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