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y to Burn
돈은 어떻게 권력이 되는가
 
지은이 : William D. Cohan
출판사 : Portfolio
출판일 : 202609







[Money to Burn: The Unvarnished Truth About Leon Black, Apollo, and the Rise of a New Wall Street]

리언 블랙과 아폴로, 월스트리트의 폐허에서 금융제국을 세우다
남들이 도망칠 때 그는 모든 것을 샀다

1990년 2월, 정크본드로 미국 기업사회를 뒤흔들었던 드렉셀 번햄 램버트가 무너졌다. 직원들은 짐을 쌌지만 인수합병 부문을 이끌던 리언 블랙은 폐허에 남겨진 채권부터 바라봤다. 시장이 쓰레기라고 버린 자산도 가격이 충분히 낮다면 황금이 될 수 있었다. 블랙과 동료들은 그 원리를 무기로 아폴로를 세웠고, 은행을 대신해 기업과 보험, 연금의 돈을 움직이는 금융제국으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위험을 계산하고 지배하는 데 능했던 블랙은 자신의 관계에서 발생한 위험에는 눈을 감았다. 윌리엄 D. 코핸(William D. Cohan)은 한 금융인의 성공과 몰락을 통해 사모자본이 월스트리트의 새로운 권력으로 떠오른 과정을 추적했다.

[Key Message]
* 위기는 자산의 가치를 없애지 않고 소유자를 바꾼다. 시장이 공포에 빠질수록 위험을 정확히 계산한 투자자에게 더 큰 기회가 열린다.

* 아폴로는 좋은 기업보다 잘못 평가된 부채를 선택했다. 부실채권을 낮은 가격에 확보하고 채권자의 권리를 활용해 수익과 경영권을 얻었다.

* 사모자본은 은행을 보완하는 세력에서 금융의 중심축으로 성장했다. 기업 인수와 직접대출을 넘어 보험과 연금자산까지 움직이는 거대한 자본 공급자가 됐다.

* 높은 투자수익의 이면에는 다른 누군가가 부담하는 비용이 존재한다. 구조조정이 투자자에게는 수익이지만 직원과 지역사회에는 해고와 사업 축소로 나타날 수 있다.

* 금융의 위험을 통제하는 능력이 신뢰와 평판까지 지켜주지는 않는다. 리언 블랙의 추락은 거대한 권력일수록 법적 책임을 넘어선 윤리적 기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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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의 몰락에서 발견한 기회
1990년 2월 13일,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공격적이었던 투자은행 드렉셀 번햄 램버트가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드렉셀은 미국 기업사회의 판도를 바꾸던 금융기관이었다.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이 발행한 고금리 채권, 이른바 정크본드를 이용해 기업 인수와 합병에 막대한 자금을 공급했다. 큰돈이 필요한 기업 사냥꾼과 차입매수 전문 투자자들이 드렉셀로 몰려들었다.

정크본드 시장의 설계자는 마이클 밀켄(Michael Milken)이었다. 그는 우량기업에만 돈을 빌려주는 전통적인 금융 관행을 뒤집었다. 신용등급이 낮더라도 충분히 높은 이자를 받고 여러 기업의 채권을 분산해 보유하면 위험을 감수할 만하다고 판단했다. 과거에는 자금을 구하기 어려웠던 중견기업에도 새로운 통로가 열렸다. 동시에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거액을 빌린 뒤 경영권을 차지하는 차입매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리언 블랙(Leon Black)은 드렉셀에서 인수합병 부문을 맡으며 거래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그는 기업의 제품이나 브랜드보다 자본구조를 먼저 들여다봤다. 회사에 어떤 부채가 있었고 담보는 무엇이며, 파산하면 어떤 채권자가 먼저 돈을 받을 수 있는지를 분석했다. 기업 전체가 흔들리더라도 특정 채권에는 가치가 남아 있을 수 있었다. 시장이 공포에 빠져 모든 채권을 한꺼번에 내던질 때 개별 계약의 차이를 발견한 사람에게는 큰돈을 벌 기회가 생겼다.

드렉셀의 성공은 밀켄이 증권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으면서 급격히 무너졌다. 밀켄은 유죄를 인정했고 회사는 신뢰와 자금줄을 동시에 잃었다. 드렉셀의 파산은 블랙에게도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그는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높은 보수를 받는 금융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조직과 지위를 잃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실패한 회사와 거리를 두려 했다. 블랙의 반응은 달랐다. 그는 드렉셀이 남긴 오명보다 시장에 쏟아진 자산의 가격을 보았다. 금융기관들은 정크본드를 서둘러 처분했고, 투자자들은 신용등급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채권을 내던졌다. 공포가 커질수록 가격은 실제 회수 가능성보다 더 빠르게 떨어졌다.

블랙은 위기가 자산의 가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소유자를 바꾸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기업이 살아남을 가능성, 파산했을 때 돌려받을 수 있는 금액, 담보를 처분했을 때의 가치만 정확히 계산한다면 시장의 혼란은 위험보다 기회에 가까웠다.

그는 드렉셀에서 함께 일했던 조시 해리스(Josh Harris), 마크 로언(Marc Rowan)과 손을 잡았다. 세 사람은 1990년 아폴로를 설립했다. 태양과 예언을 관장하는 그리스 신의 이름을 가져왔지만 출발은 화려하지 않았다. 드렉셀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고 투자자를 설득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거대한 자본이나 오랜 역사가 없었다. 대신 남들이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부채를 해부하고 그 안에서 가장 유리한 권리를 골라내는 능력이 있었다.

드렉셀의 몰락은 정크본드 시대의 종말처럼 보였다. 하지만 블랙과 동료들에게는 새로운 금융사업의 원료가 쏟아진 사건이었다. 한 시대의 잔해를 사들인 사람들은 그 잔해 위에 더 거대한 제국을 세우기 시작했다.


버려진 채권을 황금으로 바꾼 기술
아폴로는 모두가 갖고 싶어 하는 기업을 찾아다니지 않았다. 성장 가능성이 높고 재무상태가 건전한 기업에는 수많은 투자자가 몰렸고, 경쟁이 붙을수록 매입 가격도 올라갔다. 좋은 기업을 비싸게 사면 작은 실수만으로도 수익이 사라질 수 있었다.

블랙은 반대편으로 향했다. 부채가 많고 현금이 부족하며 파산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기업을 선택했다. 문제가 심각할수록 매입 가격은 낮아졌고 경쟁자는 줄었다. 회생 가능성을 과도하게 낙관하지도 않았다. 사업이 실패했을 때 얼마를 회수할 수 있는지를 먼저 계산했다.

이 전략의 핵심은 기업을 직접 사들이는 데만 있지 않았다. 기업이 발행한 채권을 낮은 가격에 확보한 뒤 채무조정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이었다. 파산한 기업의 모든 이해관계자가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다. 담보를 가진 선순위 채권자는 일반 채권자나 주주보다 먼저 돈을 받을 수 있다. 어떤 채권을 보유했는가에 따라 손실을 떠안는 사람이 될 수도, 기업의 새 주인이 될 수도 있다.

아폴로는 복잡한 자본구조 속에서 가장 유리한 자리를 찾아갔다. 채권 가격이 오르면 차익을 얻었고, 기업이 파산하면 채권을 지분으로 바꾸거나 핵심 자산을 확보했다. 사업이 회복돼도 수익을 얻고 무너져도 손실을 방어할 수 있도록 거래를 설계했다. 승부는 기업을 산 다음이 아니라 채권을 매입하는 순간부터 시작됐다.

초기 아폴로의 성장을 이끈 대표적인 기회는 미국 보험회사 이그제큐티브 라이프가 무너지면서 나타났다. 이 회사는 드렉셀이 판매한 정크본드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보험회사가 파산하자 방대한 채권 포트폴리오가 시장에 나왔다. 투자자들에게는 위험자산이 한데 뒤섞인 거대한 쓰레기 더미처럼 보였다.

그러나 블랙에게는 익숙한 자산이었다. 드렉셀에서 일하며 시장과 기업, 채권의 구조를 가까이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채권이 똑같이 부실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시장은 좋은 자산과 나쁜 자산을 구분하지 않고 가격을 떨어뜨렸다. 아폴로는 그 차이를 수익으로 바꿨다.

프랑스 금융회사 크레디리요네가 이그제큐티브 라이프의 보험사업과 채권 포트폴리오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아폴로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거래 구조는 복잡했고 이후 법적 논란도 이어졌다. 하지만 채권시장이 회복되자 헐값에 확보한 자산의 가치는 크게 상승했다. 아폴로는 창업 초기부터 막대한 수익을 올리며 투자자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블랙의 투자에는 낭만적인 기업 구원자의 모습이 없었다. 그는 어려움에 빠진 회사를 돕기 위해 자금을 넣지 않았다. 위험이 가격에 지나치게 반영됐는지, 실패하더라도 돈을 돌려받을 장치가 있는지를 따졌다. 기업의 경영진이 희망을 이야기할 때도 계약서와 담보목록을 들여다봤다.

아폴로는 화학회사와 항공사, 부동산, 유통업체, 통신회사, 카지노와 리조트 등 경기 변동에 민감한 산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경기가 나빠져 자금줄이 막히면 더 많은 기업이 도움을 요청했다. 은행과 투자자가 모두 물러나는 순간, 아폴로는 더 높은 수익률과 더 강한 권리를 요구하며 돈을 제공했다.

아폴로가 만들어낸 투자 공식은 지금도 대체투자 시장의 기본 문법으로 남아 있다. 좋은 기업을 발견하는 능력보다 어려운 상황에서 유리한 가격을 확보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기보다 예상이 빗나가도 살아남을 수 있는 위치를 선점한다. 시장의 공포를 없애려 하지 않고, 공포가 만들어낸 가격 차이를 이용한다.

하지만 같은 거래도 누구의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아폴로에 기업의 위기는 투자 기회였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생계의 위기였다. 수익성을 회복한다는 명목으로 사업부가 매각됐고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기존 주주는 지분을 잃었고 채권자들 사이에서는 손실을 떠넘기기 위한 싸움이 벌어졌다. 한쪽의 높은 수익률이 다른 쪽의 해고 통지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사모자본의 성장과 함께 계속 따라다니는 문제다.

기업을 사지 않고 지배하는 금융
사모펀드는 흔히 부유한 투자자들이 기업을 통째로 사들이는 사업으로 이해된다. 실제 작동 방식은 훨씬 복잡하다. 투자회사는 자기 돈만으로 기업을 인수하지 않는다. 인수 대상 기업의 자산과 미래 현금흐름을 근거로 대규모 부채를 조달한다. 적은 자기자본으로 큰 기업을 지배할 수 있지만 인수된 기업에는 그만큼 많은 빚이 남는다.

사업이 좋아지면 부채의 힘은 투자수익을 증폭한다. 기업의 가치가 조금만 상승해도 투자자가 투입한 자기자본의 수익률은 크게 높아진다. 반대로 실적이 악화되면 이자 부담이 회사를 압박한다. 투자회사가 얻는 보상과 인수된 기업이 감당하는 위험이 같은 크기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데 차입매수의 특징이 있다.

아폴로는 이러한 구조를 누구보다 공격적으로 활용했다. 인수 가격을 낮추고 강력한 계약 조건을 확보한 뒤 비용 절감과 자산 매각, 추가 차입과 배당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했다. 때로는 경영 개선을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높였지만, 때로는 기업이 장기간 감당해야 할 부채를 남겼다.

사모펀드가 회사를 인수한 뒤 추가로 빚을 내 투자자에게 배당하는 방식도 논란을 불렀다. 투자회사는 원금의 상당 부분을 조기에 회수할 수 있지만 부채는 기업의 대차대조표에 남는다. 이후 회사가 어려움에 빠지더라도 펀드의 손실은 이미 줄어든 상태다. 위험을 감수한 대가로 보상을 받는다는 시장 논리가 적용되지만, 누가 실제 위험을 끝까지 부담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블랙은 거친 협상가로 알려졌다. 그의 관심은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것보다 거래 조건을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만드는 데 있었다. 수억 달러가 오가는 거래에서는 작은 조건 하나가 거대한 수익 차이를 만들었다. 그는 숫자와 계약을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상대가 포기할 때까지 압박했다.

이러한 문화는 아폴로의 경쟁력이자 조직적 긴장의 원천이었다. 공동 창업자 조시 해리스와 마크 로언도 회사 성장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지만, 외부에서는 블랙이 아폴로를 대표하는 인물로 비쳤다. 강력한 창업자의 판단과 인맥이 회사를 빠르게 성장시키는 동안 후계 구도와 권한 배분을 둘러싼 갈등도 커졌다.

월스트리트의 중심은 이 시기에 조용히 이동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기업이 돈을 빌리려면 은행을 찾아갔다. 은행은 예금을 받아 기업에 대출했고, 투자은행은 채권을 발행해 시장과 기업을 연결했다. 자금을 공급할지 결정하는 권한은 대형 은행에 집중돼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은행은 더 많은 자본을 쌓아야 했고 위험한 대출을 줄여야 했다. 규제가 강화되면서 신용등급이 낮거나 재무구조가 복잡한 기업에 돈을 빌려주기 어려워졌다. 그러나 기업의 자금 수요는 사라지지 않았다.

빈자리를 차지한 곳이 아폴로와 같은 대체자산 운용사였다. 이들은 기관투자가의 자금을 모아 기업에 직접 대출하기 시작했다. 은행보다 높은 금리를 요구했지만 거래를 빠르게 결정했고 기업의 상황에 맞춰 상환 조건을 설계했다. 공개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하기 어려운 기업에는 사모신용이 새로운 자금줄이 됐다.

이 변화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아폴로를 비롯한 대형 운용사들은 더 이상 부실기업을 사들이는 사냥꾼에 머물지 않는다. 기업을 인수하는 주주이면서 동시에 자금을 빌려주는 채권자이고, 보험과 연금의 돈을 운용하는 금융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은행이 물러난 자리에서 기업의 생존을 결정하는 새로운 대출자가 됐다.

월스트리트의 권력도 은행 간판이 걸린 고층빌딩에서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는 대형 운용사의 투자위원회로 이동하고 있다. 사모자본이 한때 금융시장의 주변부에서 위험한 거래를 담당했다면, 이제는 세계경제의 자금 흐름을 결정하는 중심부에 자리한다.

보험료로 완성한 금융제국
사모펀드에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었다. 투자자에게 자금을 약속받아 기업을 인수하고 일정 기간 뒤 되팔아 수익을 돌려주는 방식이었다. 한 펀드가 끝나면 다음 펀드를 조성해야 했다. 시장이 나쁘거나 이전 투자의 성과가 부진하면 새로운 돈을 모으기 어려웠다.

블랙과 동료들은 훨씬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자금원을 원했다. 그 해답은 보험에서 나왔다.

보험회사는 고객에게 보험료를 먼저 받고 보험금은 먼 미래에 지급한다. 연금보험의 경우 수십 년 동안 자금을 운용할 수 있다. 보험회사가 보유한 막대한 자산은 급하게 돌려줄 필요가 없는 장기자본이다. 이를 운용할 권한을 확보하면 사모펀드는 새로운 거래가 생길 때마다 투자자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지속적으로 자금을 공급받을 수 있다.

아폴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설립된 보험회사 아테네와 긴밀한 관계를 구축했다. 아테네는 다른 보험회사의 연금사업을 인수하며 빠르게 성장했고 아폴로는 자산운용을 담당했다. 보험료가 들어오면 아폴로는 그 자금을 회사채와 구조화 상품, 사모신용 등 다양한 자산에 투자했다. 아테네의 성장과 함께 아폴로가 운용하는 자산도 불어났다.

이 구조는 아폴로의 사업을 완전히 바꿨다. 과거에는 문제가 생긴 기업을 찾아다니며 거래를 발굴했다면, 이제는 지속해서 유입되는 보험자금을 투자할 상품까지 직접 만들어야 했다. 아폴로가 기업에 돈을 빌려주면 그 대출은 보험자산의 투자처가 될 수 있었다. 한쪽에서는 자금을 모으고 다른 쪽에서는 그 돈이 들어갈 신용상품을 생산하는 거대한 순환구조가 형성됐다.

이러한 결합은 오늘날 대체자산 산업을 움직이는 핵심 성장모델이다. 보험회사는 장기간 운용할 수 있는 돈을 제공하고 자산운용사는 그 돈을 투입할 기업대출과 구조화 상품을 만들어낸다. 운용자산이 늘수록 수수료 수입이 커지고, 더 많은 투자상품을 확보할수록 더 많은 보험자금을 받아들일 수 있다.

평범한 가입자가 노후를 위해 납부한 보험료는 어느 기업의 인수금융이나 부동산 대출, 사모신용 상품으로 흘러들어 간다. 보험가입자는 아폴로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미래 자금 일부가 아폴로의 투자전략과 연결돼 있다.

보험과 사모자본의 결합은 양쪽에 이익을 제공한다. 보험회사는 낮은 금리 환경에서도 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고, 자산운용사는 장기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막대한 자금을 확보한다. 보험계약의 만기가 길기 때문에 시장이 일시적으로 흔들려도 자산을 서둘러 팔 필요가 적다.

하지만 장점은 위험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보험가입자가 원하는 것은 높은 투자수익보다 약속한 보험금을 안전하게 받는 일이다. 반면 자산운용사는 더 높은 수익률과 더 많은 수수료를 원한다. 복잡하고 거래가 드문 자산에 투자하면 장부상 가격은 안정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위기 때 실제로 얼마에 팔 수 있는지는 알기 어렵다.

같은 금융그룹 안에서 투자상품을 만들고 보험자금으로 이를 사들이면 가격과 수수료가 공정한지도 살펴야 한다. 자산운용사의 이익과 보험가입자의 안전이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높은 수익이 발생하면 운용사는 보상을 받지만, 손실이 커지면 보험회사와 계약자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사모자본은 은행의 역할을 가져왔지만 은행과 똑같은 방식으로 감시받지는 않는다. 대출이 공개시장에서 거래되지 않으면 위험과 가격을 외부에서 확인하기 어렵다. 사모신용 시장이 커질수록 금융시스템의 부채가 어디에 쌓이고 있는지 파악하는 일도 복잡해진다.

아폴로가 얻은 가장 강력한 자산은 특정 기업의 경영권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흘러들어 오는 장기자금이었다. 블랙이 세운 금융제국은 남들이 버린 채권을 사들이는 회사에서 출발해 시민의 보험과 연금을 움직이는 자본 공급자로 변모했다. 그의 거래는 월스트리트 내부의 승부를 넘어 평범한 사람의 노후와 연결됐다.

위험을 지배한다는 오만
리언 블랙의 성공은 월스트리트 바깥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으로 이어졌다. 그는 세계적인 미술품 수집가가 됐고 뉴욕 현대미술관을 비롯한 문화기관에서 중요한 자리를 맡았다. 거액의 기부와 예술 후원은 그를 단순한 금융인이 아니라 문화계의 유력 인사로 만들었다.

블랙에게 미술품은 부를 과시하는 장식에 그치지 않았다. 희귀한 작품을 찾아내고 가치를 판단하며 경쟁자를 제치고 소유한다는 점에서 그의 투자 방식과 닮아 있었다. 시장이 미처 알아보지 못한 가격과 가치를 발견하려는 욕망은 금융과 미술품 수집을 관통했다.

그러나 그의 명성과 지위를 한꺼번에 흔든 것은 복잡한 금융거래가 아니었다.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Jeffrey Epstein)과의 관계였다.

엡스타인은 부유한 금융인과 정치인, 학자, 유명 인사들과 폭넓게 교류했다. 그는 2008년 미성년자 성매매 알선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뒤에도 상류사회 인사들과 관계를 이어갔다. 블랙 역시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블랙은 엡스타인에게 세금과 상속, 자산관리와 관련한 자문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지급한 금액이었다. 공개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블랙이 엡스타인에게 지급한 돈은 1억5천만 달러를 훌쩍 넘었다. 세계적인 회계법인이나 로펌에도 좀처럼 지급되지 않을 규모였다. 더구나 상당한 거래가 엡스타인의 유죄판결 이후에 이뤄졌다.

아폴로 이사회가 의뢰한 외부 조사에서는 블랙이 엡스타인의 범죄행위에 관여했다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블랙이 지급한 자문료를 통해 상당한 세금 절감 효과를 얻었다는 설명도 제시됐다. 법률적으로 두 사람의 금전관계를 설명할 근거는 마련된 듯했다.

그러나 사회가 던진 질문은 달랐다. 세계 최고의 변호사와 회계사를 얼마든지 고용할 수 있었던 금융인이 왜 유죄판결을 받은 엡스타인을 계속 찾았는가. 막대한 자문료는 무엇을 위해 지급됐으며, 블랙은 왜 그 관계가 자신의 회사와 문화기관, 투자자의 신뢰에 미칠 영향을 외면했는가.

블랙이 평생 사용했던 투자 원칙에 비춰보면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그는 작은 계약 조항 하나까지 살피며 최악의 상황에서 얼마를 잃을지 계산했다. 기업의 부채 구조에서는 다른 누구보다 위험에 민감했다. 그러나 엡스타인과의 관계에서는 가장 분명한 경고 신호를 무시했다.

두 모습은 완전히 다르면서도 묘하게 닮아 있었다. 블랙은 위험을 피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충분한 정보와 돈, 영향력을 갖고 있다면 위험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부실채권 시장에서는 그 확신이 막대한 수익을 안겼다. 사적인 관계에서는 같은 확신이 치명적인 오판으로 돌아왔다.

논란이 커지자 블랙은 아폴로의 최고경영자와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자신이 세운 회사의 지휘권은 공동 창업자 마크 로언에게 넘어갔다. 세계적인 금융회사를 만들어낸 창업자는 회사의 최대 자산에서 가장 큰 평판 위험으로 바뀌었다.

블랙의 퇴진은 개인의 몰락으로 끝나지 않았다. 금융회사가 창업자의 능력과 인맥에 의존해 성장할 때 그 인물의 사생활과 판단도 회사의 위험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법을 위반했는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고객의 연금과 보험자산을 관리하는 조직에는 법률보다 넓은 신뢰의 기준이 요구된다.

그가 문화기관에 제공한 거액의 기부도 논쟁의 대상이 됐다. 기부는 예술과 공공기관을 지원했지만 동시에 기부자에게 명성과 사회적 권위를 부여했다. 돈을 받은 기관은 그의 이름과 평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금융으로 축적한 부가 문화적 권위로 전환되고, 문화적 권위가 금융인의 이미지를 보호하는 순환구조가 드러났다.

돈과 위험, 책임의 새로운 배분
리언 블랙의 인생을 성공과 몰락이라는 단순한 구조로만 읽으면 아폴로가 만들어낸 더 큰 변화를 놓치게 된다. 블랙이 회사를 떠난 뒤에도 아폴로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창업자 중심의 투자회사에서 보험과 신용, 부동산, 인프라를 아우르는 거대한 자산운용사로 성장했다.

블랙이 만든 가장 중요한 유산은 몇 건의 뛰어난 거래가 아니었다. 공포에 빠진 시장에서 자산을 사들이고, 복잡한 부채를 이용해 기업을 지배하며, 보험자금을 장기적인 투자재원으로 바꾸는 시스템이었다. 뛰어난 개인의 감각은 조직의 투자 절차와 금융상품으로 전환됐다.

이 시스템은 현대 경제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한다. 은행이 대출하기 어려운 기업은 사모신용을 통해 사업을 이어갈 수 있고, 파산 위기에 놓인 기업도 새로운 자본을 받아 회생할 수 있다. 시장이 얼어붙었을 때 위험을 감수하는 투자자는 경제의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사모자본이 위기 때 돈을 벌 수 있는 이유도 함께 살펴야 한다. 누군가는 자산을 급하게 팔아야 하고, 누군가는 더 이상 대출받을 수 없으며, 누군가는 협상할 힘을 잃기 때문이다. 위기는 모든 사람에게 같은 의미가 아니다. 현금이 풍부한 투자자에게는 세일 기간이지만, 빚을 갚아야 하는 기업과 일자리를 지켜야 하는 직원에게는 선택권이 사라지는 시간이다.

기업이 회생했다는 결과만으로 이해관계자 모두가 보호됐다고 말할 수도 없다. 수익성이 낮은 사업은 정리되고 직원은 감축된다. 공장은 폐쇄되거나 매각되며 경영진은 단기간에 현금흐름을 개선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투자자는 높은 수익을 얻지만, 그 수익을 만드는 데 들어간 사회적 비용은 재무제표에 온전히 기록되지 않는다.

사모자본이 보험과 연금까지 포괄하면서 질문은 더욱 중요해졌다. 아폴로가 운용하는 돈에는 억만장자의 자산만 있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시민이 노후를 대비해 납부한 보험료와 연금도 포함돼 있다. 사모자본은 노동자를 해고하는 기업의 소유자인 동시에 다른 노동자의 노후자금을 관리하는 운용자가 된다.

주주와 채권자, 대출자와 자산운용자의 역할이 한 조직 안에서 결합하면 이해관계도 복잡해진다. 어느 기업의 비용을 줄여 얻은 수익이 연금 가입자에게 돌아갈 수 있다. 한쪽의 고용 안정과 다른 쪽의 노후 안정이 같은 금융구조 안에서 충돌한다.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비용을 부담하는지를 한눈에 알아보기 어려워진다.

아폴로의 역사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금융의 역할이 어디까지 확대됐는지를 보여준다. 대형 자산운용사는 자금을 중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기업을 소유하고, 돈을 빌려주고, 구조조정을 주도하며, 보험료를 투자하고, 사회기반시설의 운영에도 참여한다. 국가와 은행이 담당했던 기능의 일부가 사적인 자본운용사로 넘어가고 있다.

권력은 커졌지만 외부의 시선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공개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과 채권은 가격과 거래 정보가 드러나지만, 사모시장의 계약은 외부에서 들여다보기 어렵다. 자산 가격이 어떻게 평가됐는지, 계열회사 사이에 어떤 수수료가 오갔는지, 손실 위험이 어디에 남아 있는지를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블랙은 시장의 빈틈에서 기회를 발견했다. 그가 아폴로를 세운 뒤 수십 년 동안 그 빈틈은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했다. 은행이 떠난 자리, 파산한 기업의 부채, 보험회사가 보유한 장기자금, 공개시장이 감당하지 못한 위험이 모두 사모자본의 영토가 됐다.

그의 삶이 남긴 가장 날카로운 질문은 부를 얼마나 축적했느냐가 아니다. 위험을 계산하는 사람이 그 위험을 다른 사람에게 넘길 권리까지 가져도 되는가라는 문제다. 금융인은 손실 가능성을 숫자로 바꿀 수 있지만, 해고된 직원의 삶이나 보험가입자의 불안, 무너진 신뢰까지 같은 방식으로 계산할 수는 없다.

리언 블랙은 남들이 도망칠 때 샀다. 그 선택은 그를 월스트리트의 승자로 만들었다. 그러나 모든 위험이 헐값에 매입해 수익으로 바꿀 수 있는 자산은 아니었다. 계약으로 통제할 수 없는 신뢰와 평판, 책임의 문제 앞에서 그의 금융 공식은 작동하지 않았다.

아폴로가 다시 만든 월스트리트는 블랙이 물러난 뒤에도 더 크게 움직이고 있다. 돈은 은행의 금고에서 사모자본의 펀드와 보험계정으로 이동했고, 자산운용사는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는 새로운 권력이 됐다. 이제 필요한 질문은 사모자본이 좋은가 나쁜가가 아니다. 그 권력이 누구의 돈으로 움직이고, 누구에게 책임을 지며, 실패했을 때 누가 비용을 감당하는지를 밝히는 일이다.

블랙은 폐허에서 돈을 발견했다. 아폴로는 그 돈으로 금융의 질서를 바꿨다. 이제 사회가 들여다봐야 할 대상은 한 억만장자의 화려한 성공이 아니라, 그가 남긴 질서 속에서 돈과 위험, 책임이 서로 다른 사람에게 배분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