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선주의의 칼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Liberation Day'라는 이름으로 역사적...



  • 미국 우선주의의 칼날: 관세로 흔들리는 세계와 한국

    트럼프의 관세 선언, 무역의 정의를 다시 쓰다
    2025년 4월 2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Liberation Day'라는 이름으로 역사적 선언을 감행했다. 모든 수입품에 대해 10%의 보편관세를 부과하고, 특정 국가에 대해서는 최대 50%에 달하는 고율 관세를 적용하겠다는 조치였다. 그 근거는 ‘국가비상경제권법(IEEPA)’. 원래는 테러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는 법이지만, 트럼프는 이를 미국의 무역적자가 국가 안보를 해친다는 이유로 전용했다. 이처럼 행정부가 관세를 외교·안보 프레임에 올려놓은 것은 이례적이었고, 국제사회에 미치는 파장은 컸다.

    트럼프는 이 정책을 “상호주의(Reciprocal Tariffs)”로 포장했다. 한국이 미국에 자동차를 수출하면서 25% 관세를 내지 않는데, 미국산 자동차에는 그만큼의 세금이 붙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실제로는 경제적 계산보다는 정치적 태도에 따라 관세율이 정해졌다. 중국, 유럽연합, 한국, 캐나다 등 대부분 동맹국들이 고율 관세 대상이 되었지만, 트럼프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나 이스라엘은 사실상 면제되었다. 이로써 미국의 관세는 기존의 무역정책을 넘어, 정치적 메시지이자 대외 압박 수단으로 기능하게 됐다.

    관세율은 단지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국제관계에서 '당신은 적인가, 친구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전환되었다. WTO 체제하에서 쌓아온 규범들은 더 이상 지켜지지 않았고, 미국은 양자 협상 중심의 새로운 무역 질서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관이자, 세계를 다시 분할하는 선 긋기였다.

    법과 정치의 경계에서: IEEPA의 위험한 확장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그 전개 방식에서도 충격적이었다. 그는 의회의 승인 없이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법적 도구로 국가비상경제권법(IEEPA)을 활용했다. 이 법은 1977년 제정된 이후 대부분 외환 동결, 대테러 제재, 적성국 거래 금지 등 제한적인 영역에서만 사용됐다. 무역 전반에 대한 포괄적 관세 부과로 사용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트럼프는 무역적자를 ‘국가의 위협’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이를 바로잡는 행위를 대통령의 비상권한에 포함시켰다. 이는 국제법적 맥락에서도 이례적이지만, 국내 헌법 질서에서도 도전을 의미했다. 이미 하급심에서는 해당 조치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관세는 본래 의회가 통제해야 할 ‘세금’이며, 행정부가 무제한적으로 이를 부과할 권한은 없다는 논리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행정부는 항소했고, 연방 대법원은 2025년 7월 말 구두심리에 착수한다. 이 판결은 미국의 정치·경제 시스템에서 권력 분산의 원칙을 다시 시험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 관세 논란은 단지 수출입의 문제가 아니라, 입법과 행정, 권력과 법의 균형을 둘러싼 대결의 장이기도 하다.

    이 같은 법적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관세는 일단 효과를 내고 있다. 협상을 지렛대로 삼아, 미국은 각국으로부터 투자 약속과 시장 접근 확대를 얻어내고 있다. 일본은 관세를 낮추는 대신 미국 내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고, 캐나다도 일부 철강 품목에서 면제 조건을 이끌어냈다. 트럼프식 협상술은 예측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오히려 상대국을 압박하는 데 유리한 무기가 되고 있다.

    한국의 선택: 줄다리기와 전략적 계산
    한국은 이번 관세 전쟁에서 가장 곤란한 위치에 놓였다. 미국과는 안보 동맹 관계에 있으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무역 상대국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에도 25%의 고율 관세를 적용하겠다고 밝혔고, 90일간의 유예기간이 8월 1일 종료된다. 현재 한국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막바지 협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은 일본의 협상 모델을 참고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 내 대규모 투자를 조건으로 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한국도 삼성, 현대차, 한화 등의 미국 내 투자 계획을 협상 카드로 활용 중이며, 조선업 분야에서는 미국 해군과의 협력 제안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이 가진 기술력과 산업 기반을 전략적으로 내세워, '동맹국으로서의 특별대우'를 얻어내려는 시도다.

    그러나 쉽지 않다. 트럼프는 '누구에게도 예외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모든 동맹국이 미국에 더 많이 기여해야 한다고 본다. 이는 단순한 경제 협상이 아니라, ‘미국 우선주의’에 복무하느냐의 태도 싸움이기도 하다. 한국 정부는 협상 카드가 점점 줄어드는 가운데, 관세 폭탄을 피하기 위해 안보, 투자, 산업 전반을 총동원한 포괄적 전략을 구사 중이다.

    한편, 국민 여론은 점차 냉담해지고 있다. 미국에 대한 우호감은 2024년 대비 크게 하락했으며, 관세 협상과 방위비 분담, 반도체 동맹 등 다양한 이슈에서 ‘의존 대신 자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은 이제 외교적 유연성과 산업적 체력을 동시에 시험받는 중이다.

    세계 질서의 균열: 공급망 재편과 WTO의 퇴장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단순히 양자관계에서의 문제를 넘어, 세계 질서 전반을 흔들고 있다. 우선 가장 큰 충격은 공급망에 나타난다. 미국이 고율 관세를 적용하면서, 기업들은 중국 → 베트남 → 한국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경로를 택하게 됐다. 이른바 ‘우회 수입(transshipment)’이 증가하자, 미국은 이들 경로에 대한 조사와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다국적 기업들은 기존의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고 있다. 중국 중심의 생산구조는 약화되고, 동남아시아와 인도, 멕시코 등으로 분산되는 양상이 뚜렷하다. 동시에 아세안 국가들은 무역 통합을 강화하고 있으며, 한국도 이 지역에 물류 허브와 조립기지를 구축하고 있다. 이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기존 산업생태계에 커다란 전환을 요구한다.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WTO 체제의 무력화다. 과거에는 무역 분쟁이 생기면 WTO가 중재했지만, 트럼프는 이를 무시하고 개별 협상으로 모든 문제를 처리하고 있다. 각국도 이에 따라 자구책을 찾기 시작했다. 캐나다는 미국과의 양자협상을 강화했고, 유럽연합은 보복관세를 검토 중이며, 중국은 내수 중심 경제로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다자주의의 후퇴, 양자주의의 대두. 이는 새로운 세계경제의 이정표다.

    관세의 그림자: 인플레이션과 저성장의 미래
    관세는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아직은 기업들이 재고로 버티고 있지만, 그 한계는 명확하다. 2026년부터는 본격적인 물가 상승이 예상되고 있다. 미국 내에서는 이미 가전제품, 의류, 구리 등의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고, 한국 역시 일부 품목에서 수입단가가 상승하고 있다.

    문제는 물가만이 아니다. 관세로 인해 수출이 줄어들고,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되며, 고용이 위축되고 있다. 미국은 소비 둔화와 생산 비용 증가가 동시에 일어나면서 스태그플레이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도 2026년 경제성장률이 1%대 초반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며, 물가는 3%를 상회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제는 연결되어 있다. 관세라는 단일 조치가 투자, 소비, 수출, 고용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세계경제 전체의 리듬을 흔든다.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단기적 정치 성과를 가져올 수는 있겠지만, 그 대가를 향후 수년간 세계가 함께 치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