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한국의 조선업 협력 전망 - 트럼프 시대의 동맹과 긴장
조선업은 단순한 산업이 아니다. 바다는 여전히 전 세계 무역의 90% 이...



  • 미국과 한국의 조선업 협력 전망 - 트럼프 시대의 동맹과 긴장

    조선업과 국가 전략
    조선업은 단순한 산업이 아니다. 바다는 여전히 전 세계 무역의 90% 이상을 담당하는 길이며, 석유·가스·곡물·원자재가 이동하는 생명선이다. 군사적으로도 바다는 패권의 무대다. 항공모함과 잠수함, 군수지원선의 건조 능력은 곧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 따라서 조선업은 제조업을 넘어 '국가 전략의 핵심 인프라'라 할 수 있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미국은 세계 조선업의 최강자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불과 5년 동안 자유선(Liberty Ship)을 2,700척 이상 건조하며 전쟁의 흐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전후 고임금 구조와 아시아 국가들의 부상으로 상업 조선업 경쟁력을 상실했고, 지금은 군수·특수선 위주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반대로 한국은 1970년대 국가 전략 산업으로 조선업을 키운 이후, 세계 2위 조선 대국으로 성장했다. 부산·울산·거제 조선소 단지에서 쏟아지는 초대형 컨테이너선, LNG 운반선, 유조선은 세계 해운의 표준이 되었다. '2024년 기준 세계 조선업 수주 점유율'은 중국 50%, 한국 31%, 일본 10% 수준이다. 그러나 고부가가치 LNG 운반선 분야에서만큼은 한국이 세계 발주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양에서는 중국이 앞서지만, 질과 수익성에서는 한국이 독보적이다.

    이 같은 불균형 속에서, 미국은 군사·상업 조선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한국과의 협력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들어서고 있다.

    한국 조선업의 강점과 미국의 한계
    한국 조선업의 힘은 기술, 규모, 인력에서 나온다.

    첫째, '친환경 선박 기술'이다. 국제해사기구(IMO)의 탄소 감축 규제가 강화되면서 LNG·암모니아·메탄올 추진선이 급부상했는데, 한국은 이 분야에서 압도적 경쟁력을 갖고 있다. 카타르 국영석유사의 LNG 프로젝트(100척 이상)는 대부분 한국 빅3 조선소가 수주했다.

    둘째, '규모의 경제'다.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는 세계 최대 규모로, 동시에 40척 이상의 선박을 건조할 수 있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한화오션 옥포조선소 역시 초대형 도크와 첨단 설비를 보유해, 수주만 있으면 즉시 대규모 생산에 돌입할 수 있다.

    셋째, '숙련 인력과 공급망'이다. 조선업은 단순 용접이 아니라, 배관·전장·선박설계·해양플랜트까지 복합적 기술이 필요한 산업이다. 한국은 50년 이상 축적된 노하우와 숙련공 집적지를 보유하고 있어, 단기간에 대체가 불가능하다.

    이에 비해 미국은 상업 선박 건조에서 사실상 1% 미만의 점유율만 차지하고 있다. 버지니아급 잠수함, 포드급 항공모함 같은 군사 프로젝트는 진행 중이지만, 예산 초과와 인도 지연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 미 해군의 수송선 확보 계획은 인력 부족과 조선소 생산 지연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즉, '수요는 폭발하지만 공급 능력은 취약'한 구조가 미국의 현실이다.

    존스법, 행정명령, 그리고 트럼프의 계산
    미국 조선업 부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제도적 장벽은 1920년 제정된 존스법(Jones Act)이다. 이 법은 미국 항만 간 운송 선박은 반드시 미국에서 건조·소유·운항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노동조합과 보호무역 진영은 이를 성역처럼 지켜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특유의 '실용적 보호무역주의'로 접근하고 있다. 그는 존스법을 정면으로 폐지하지는 않겠지만, 대통령 행정명령(Executive Order)을 통해 '군사 목적 선박'에 한해 예외를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트럼프는 1기 집권 시절에도 “산업 부흥은 미국 땅에서”라는 기조를 고수하면서도, 필요하다면 규제를 과감히 우회한 전례가 있다.

    지금 미국 조선소의 생산 능력으로는 군함 건조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는 점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 조선소를 활용해 군수지원선이나 보조 전력을 제조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는 존스법의 정신과 충돌하지만, '중국 견제와 해군력 확충'이라는 더 큰 전략적 목표를 위해 “한시적 예외”를 설정하는 방식이다.

    트럼프 특유의 스타일상, 이런 결정을 “미국 안보를 위한 거래”라는 명분으로 포장해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 즉, 존스법은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한국을 통한 우회로를 열어두는 것이다.

    지정학적 변수: 중국의 견제와 일본의 협력
    미국과 한국의 조선업 협력이 본격화될 경우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이미 '세계 조선 발주량의 절반'을 차지하며 양적으로는 1위다. 상하이와 다롄 조선소는 초대형 컨테이너선과 군함을 동시에 건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지난 10년 동안 중국은 항공모함 3척, 구축함 수십 척을 진수하며 해군력을 급격히 키웠다.

    따라서 미국이 한국 조선소에서 군함을 건조한다면, 중국은 이를 단순한 산업 문제가 아니라 군사적 도발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 대한 외교적 압박, 경제적 보복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는 한국이 감수해야 할 외교적 리스크다.

    반면 일본은 기회 요인이다. 일본은 1980년대 세계 1위 조선국이었으나, 지금은 점유율이 10% 이하로 줄어 고부가가치 특수선과 부품·소재 산업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안보동맹을 고려하면, 일본은 미·한 협력 구도에 일정 부분 동참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대형 선박 기술 + 일본의 정밀 소재·부품 + 미국의 전략적 수요'라는 삼각 협력 모델은 현실적이다.

    이런 구조가 자리 잡으면, 미·한·일은 해양 조선업에서도 사실상 동맹 구도를 구축하게 된다. 이는 중국을 견제하는 안보적 효과와 동시에, 동북아 해양 경제 질서를 새롭게 재편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다만 한국 입장에서는 일본과의 협력이 국내 여론과 역사 문제의 장애물을 넘어야만 가능하다.

    협력 모델과 도전 과제
    현실적으로 가능한 협력 모델은 크게 네 가지다.

    1. '군함 및 군수지원선 공동 생산': 한국 조선소에서 선체를 건조하고, 미국에서 최종 무장·조립을 진행하는 분업 모델.

    2. '합작 투자와 기술 이전': 한국 조선사가 미국 내 조선소에 투자해 생산 능력을 높이고, 기술 일부를 이전하는 방식.

    3. '친환경·스마트 선박 공동 개발': 수소·암모니아 추진선, 디지털 트윈 기반 선박 관리 시스템 같은 미래 프로젝트에서 협력.

    4. '해양 인력 공동 양성': 한국의 숙련 인력을 미국 조선업 재교육에 활용하거나, 공동 아카데미 설립.

    그러나 도전 과제도 만만치 않다. 미국 내 보호무역주의 정서와 노동조합 반발은 거세다. 한국 입장에서는 기술 유출 우려와 산업 경쟁력 약화가 문제다. 여기에 중국의 견제, 일본과의 협력 과정에서의 정치적 갈등까지 고려하면, 조선업 협력은 단순한 경제 협력을 넘어 '외교·안보·정치적 리스크'가 복합적으로 얽힌 사안이다.

    한국의 대응 전략: 기술, 외교, 산업의 균형
    한국은 세계 2위 조선 강국이자, 고부가가치 선박 분야에서는 사실상 독점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의 협력이 본격화되면, 이 위치가 흔들릴 위험도 존재한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조선업 협력을 단순한 수주 확대 차원이 아니라, '산업 경쟁력·기술 보호·외교 균형'을 동시에 고려하는 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

    첫째, '기술 보호 장치'가 필수다. 미국과 군함·군수선 공동 건조가 이루어질 경우, 핵심 설계와 엔지니어링 데이터가 유출될 위험이 크다. 한국은 군사 기술뿐 아니라 LNG·암모니아 추진선 같은 친환경 선박 기술에서도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는데, 이 기술은 미래 30년 조선업 패권을 결정할 자산이다. 따라서 공동 프로젝트라도 '기술 이전 범위를 최소화하고, 공동 연구개발(R\&D) 방식으로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둘째, '외교적 균형 유지'다. 미국과의 협력은 필연적으로 중국의 견제를 불러온다. 이미 중국은 세계 수주량 50%를 차지하며, 한국을 최대 경쟁자로 간주한다. 만약 한국이 미국의 군함 건조에 적극 가담한다면, 중국은 LNG 수주 시장이나 철강·부품 공급망에서 보복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한국은 미국과 협력하되, 중국과는 민간 상업 조선 부문에서의 협력을 병행하는 다층적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셋째, '산업 생태계 강화'다. 한국 조선업은 수주 면에서 강세지만, 인력 부족과 하청 구조 문제로 체질적 약점이 존재한다. 숙련공 고령화와 젊은 인력 유입 부족은 이미 심각한 문제다. 미국과 협력해 대규모 수주를 감당하려면, '국내 인력 양성·자동화 투자·산업 생태계 재편'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넷째, '다변화된 발주처 확보'다. 미국과의 협력은 안정적 수주처를 제공하지만, 특정 시장 의존이 지나치면 위험하다. 카타르, 사우디, 노르웨이, 유럽 선주사와의 장기 계약을 유지하고 확대해야 한다. 그래야 미국과의 협력이 정치적 변동으로 흔들려도 한국 조선업이 흔들리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국내 전략 산업으로서의 조선업 재위치'가 필요하다. 반도체와 배터리처럼, 조선업도 국가 전략 차원에서 지원해야 한다. 탄소중립 선박·자율운항선박·스마트야드 같은 차세대 분야에 국가 차원의 투자와 규제 혁신이 필요하다. 미국과의 협력은 단기적 수주 기회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국 조선업 자체를 업그레이드할 발판이어야 한다.

    미래 전망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의 “America First” 기조 아래, 존스법을 유지하면서도 행정명령을 통해 한국 조선소 활용의 길을 열 수 있다. 중국은 이를 견제할 것이고, 일본은 일부 협력자로 참여할 수 있다. 한국은 이 틈바구니에서 기술 보호·외교 균형·산업 강화라는 세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사실, 트럼프 행정부가 내세우는 “America First”는 겉으로는 자국 산업 보호를 강조하지만, 실용주의적 측면도 있다. 조선업은 미국 혼자서 회생시킬 수 없는 산업이다. 따라서 한국과의 협력은 불가피하다. 트럼프는 이를 “미국 안보를 위한 거래”로 설명하며 정치적 부담을 줄일 가능성이 크다.

    이에 한국에게는 기회와 위험이 동시에 존재한다. 안정적 발주처를 확보하고 동맹 위상을 강화할 수 있지만, 기술 유출과 중국의 반발이라는 리스크도 안아야 한다. 일본은 삼각 협력 구도 속에서 보조적이지만 중요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

    결국 조선업 협력은 단순한 산업 계약이 아니라, '동맹의 신뢰를 시험하는 무대'다. 한국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30년 세계 조선업 질서와 동북아 해양 전략의 균형이 달라질 수 있다.

    세계 조선업 판도는 단순히 수주 경쟁이 아니라 '해양 패권의 시험대'다. 미국의 전략, 한국의 기술, 일본의 부품이 교차하는 바다는 기회와 긴장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앞으로의 조선업 협력은 단순한 산업 계약이 아니라 동맹의 신뢰와 전략적 미래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