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AI, 정확도만으로는 통과할 수 없다
의료 AI의 경쟁 기준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높은 정확도를 제시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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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 AI, 정확도만으로는 통과할 수 없다
    - 규제기관의 AI 가이드라인 확대가 검증 책임과 설명가능성을 새로운 시장 진입 조건으로 만들고 있다

    의료 AI의 경쟁 기준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높은 정확도를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환자에게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워졌다. 규제기관은 학습데이터의 품질과 대표성, 임상 환경에서의 성능, 모델 변경 이력, 의료진의 개입 방식까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의료 AI 기업의 핵심 역량도 알고리즘 개발에서 검증·문서화·감시·책임 관리가 결합된 규제 대응 능력으로 확장되고 있다.

    [Key Message]
    * 의료 AI의 경쟁은 정확도 중심에서 임상적 증거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높은 성능 수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다양한 환자군과 실제 의료 환경에서도 안전성과 유효성이 유지된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 의료 AI의 검증 책임은 개발사를 넘어 병원과 의료진까지 확대되고 있다. 개발사는 기술의 한계와 사용 범위를 명확히 제시하고, 의료기관은 실제 진료 환경에서의 적합성과 성능을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 설명가능성은 알고리즘의 내부 구조를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의료진과 환자가 AI의 목적, 적용 범위, 성능, 한계와 오류 가능성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 의료 AI의 안전성은 한 번의 허가가 아니라 지속적인 감시를 통해 유지된다. 데이터 변화와 모델 업데이트에 따른 성능 저하를 추적하고, 문제가 발견되면 재검증하거나 사용 범위를 제한할 수 있어야 한다.

    * 규제 대응 능력은 의료 AI 기업의 새로운 경쟁력이 되고 있다. 데이터 관리, 임상 검증, 변경 이력, 문서화, 사후 모니터링을 체계적으로 수행하는 기업이 시장의 신뢰와 글로벌 진출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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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능 경쟁에서 증거 경쟁으로
    의료 AI 산업의 초기 경쟁은 얼마나 높은 정확도를 구현하느냐에 집중됐다. 의료영상에서 병변을 찾아내는 정확도, 질병 위험을 예측하는 민감도와 특이도, 의료진보다 빠르게 데이터를 분석하는 처리 속도가 기술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였다. 일부 기업은 특정 시험에서 전문의와 비슷하거나 더 높은 성능을 기록했다는 결과를 앞세워 의료 AI의 가능성을 알렸다.

    그러나 의료 현장에서 정확도라는 숫자는 생각보다 복잡한 의미를 가진다. 개발 단계에서 확보한 시험데이터로 높은 성능을 냈다고 해서 모든 병원과 환자에게 같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학습에 사용된 환자의 연령, 성별, 인종, 질병 중증도와 실제 사용 환경의 환자 구성이 다르면 성능이 낮아질 수 있다. 의료영상 장비의 제조사와 촬영 조건이 달라져도 입력데이터의 특성이 달라진다. 동일한 질환이라도 병원마다 진단 기준과 진료 절차가 다르기 때문에 AI의 출력이 임상적으로 활용되는 방식도 달라진다.

    규제기관이 의료 AI를 바라보는 관점도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변화하고 있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시험데이터에서 몇 퍼센트의 정확도를 기록했느냐가 아니다. 어떤 목적으로 개발됐는지, 어느 환자군에서 검증됐는지, 어떤 환경에서 성능이 떨어질 수 있는지, 오류가 발생했을 때 환자에게 어느 정도의 위험이 생기는지를 함께 확인한다. 성능을 보여주는 숫자보다 그 숫자가 만들어진 조건과 근거가 중요해진 것이다.

    미국 식품의약국은 AI가 포함된 의료기기 소프트웨어를 개발과 허가 단계에 한정해 평가하지 않고, 제품의 전체 생애주기에 걸쳐 관리하는 방향을 강화하고 있다. 개발사는 모델 구조와 학습 과정뿐 아니라 학습·검증·시험데이터를 어떻게 구분했는지, 데이터가 실제 사용 대상자를 충분히 대표하는지, 모델의 한계와 위험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도 설명해야 한다. 제품이 시장에 나온 이후 성능을 어떻게 관찰하고 문제를 어떻게 보고할 것인지도 중요한 검토 대상이 된다.

    이러한 변화는 의료 AI의 경쟁이 성능 경쟁에서 증거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뛰어난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능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알고리즘이 다양한 환자와 임상 환경에서 안전하고 유효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재현 가능한 자료로 증명해야 한다.

    기업도 개발 초기부터 검증 전략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제품 개발을 완료한 뒤 허가를 위해 자료를 모으는 방식으로는 규제기관이 요구하는 수준의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다. 어떤 환자를 대상으로 삼을 것인지, 어떤 위험을 줄이려는 것인지, 의료진의 판단 과정에서 어느 위치에 사용될 것인지를 먼저 정의해야 한다. 이후 해당 목적에 맞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환자군별 성능 차이와 실패 가능성을 분석해야 한다.

    의료 AI 시장에서 높은 정확도는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정확도는 제품의 가치를 증명하는 출발점일 뿐이다. 앞으로는 성능이 만들어진 과정과 사용 가능한 범위, 임상적 효과와 위험을 함께 입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신뢰받는 의료기술로 인정받을 수 있다.

    검증 책임은 개발사 밖으로 확대된다
    의료 AI는 독립적으로 진료하는 존재가 아니다. 병원의 의료정보시스템과 연결되고, 의료진의 판단에 영향을 주며, 환자의 검사와 치료 과정에 포함된다. 같은 제품이라도 어떤 병원에서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의료 AI의 안전성을 알고리즘 자체의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과거 의료기기 규제에서는 제조사가 제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었다. 의료 AI에서도 개발사와 제조사가 중심적인 책임을 지지만, 실제 운영 과정에서는 병원과 의료진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 병원이 제품의 사용 목적을 임의로 확대하거나 검증되지 않은 환자군에 적용한다면 허가 당시 확보한 안전성이 유지되지 않을 수 있다. 의료진이 AI의 결과를 절대적인 판단으로 받아들이거나, 반대로 필요한 경고를 반복해서 무시할 경우에도 새로운 위험이 발생한다.

    따라서 의료 AI의 검증은 시장 진입 전 제조사가 한 차례 수행하는 시험으로 끝나기 어렵다. 도입하는 병원도 자사의 환자 구성과 장비, 업무 절차에 적합한지를 확인해야 한다. 기존 검사 방식과 비교해 실제로 진료 품질을 높이는지, 특정 환자군에서 오류가 집중되지 않는지, 의료진이 결과를 올바르게 이해하는지를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책임의 범위는 데이터 공급자와 외부 기술업체로도 확대된다. 의료 AI 개발에는 병원에서 생산된 임상데이터, 외부에서 구매한 데이터세트, 클라우드 인프라, 범용 AI 모델 등이 복합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데이터의 출처가 불분명하거나 라벨링 기준이 일관되지 않으면 모델의 성능과 공정성을 신뢰하기 어렵다. 범용 모델을 의료 목적으로 변형해 사용하는 경우에는 원래 모델의 변경과 업데이트가 의료 기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책임을 한 기업이나 한 부서에만 맡기기 어렵다. 개발팀은 모델의 기술적 특성과 한계를 설명해야 하고, 임상팀은 실제 진료에서의 의미를 평가해야 한다. 품질관리 부서는 변경과 오류를 기록하고, 규제 담당자는 제출 자료와 운영 절차가 요구사항을 충족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병원에서는 의료진, 정보기술 담당자, 의료기기 관리부서, 윤리·법무 조직이 함께 도입과 운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생성형 AI가 의료 현장에 들어오면서 책임의 경계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진료기록을 요약하거나 환자 안내문을 작성하는 AI는 진단 AI보다 위험이 낮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잘못된 정보를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제시하거나 중요한 의료정보를 누락한다면 진료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의료진이 출력 내용을 검토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더라도, 업무량이 많아지면 검토가 형식적인 절차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의료 AI의 책임 체계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가 책임지는지를 정하는 데만 목적이 있지 않다. 위험을 사전에 발견하고 통제하기 위해 각 참여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개발사는 제품의 사용 범위와 한계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병원은 허가된 목적과 실제 사용 방식이 일치하는지 관리해야 한다. 의료진은 AI의 결과를 임상적 맥락에서 검토하고, 의심스러운 결과를 보고할 수 있어야 한다.

    의료 AI의 검증 책임이 확대된다는 것은 책임이 분산돼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개발부터 사용까지 이어지는 과정마다 책임 주체와 확인 절차를 더 명확하게 설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기술이 의료 체계 안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안전성은 한 번의 승인보다 여러 참여자가 연결된 관리 구조를 통해 확보된다.

    설명가능성은 기술 설명이 아니라 임상 정보다
    의료 AI 규제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설명가능성이다. 그러나 설명가능성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두고는 여전히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어떤 사람은 AI가 결론에 도달한 계산 과정을 모두 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의료진이 이해할 수 있는 근거만 제공하면 된다고 본다.

    복잡한 딥러닝 모델의 내부 작동을 완전히 설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수백만 개 이상의 매개변수가 상호작용해 결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특정 출력이 나온 원인을 한두 문장으로 정리하기 어렵다. 모델의 내부 계산을 시각화하거나 특정 입력의 중요도를 표시하는 기술도 있지만, 그것이 곧 임상적으로 타당한 설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모델이 영상의 특정 영역에 주목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더라도, 그 영역이 의학적으로 적절한 근거인지 별도로 검토해야 한다.

    의료 AI에서 필요한 설명은 모델 내부를 모두 들여다보는 것보다 사용자가 안전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의료진은 AI가 어떤 환자와 질환을 대상으로 개발됐는지, 어느 상황에서 사용해서는 안 되는지, 어떤 입력 조건에서 성능이 낮아지는지를 알아야 한다. 제시된 결과가 확정적인 진단인지 참고 의견인지, 의료진의 추가 확인이 필요한지도 분명해야 한다.

    환자에게 필요한 설명은 의료진에게 필요한 설명과 다를 수 있다. 환자는 자신의 진료에 AI가 사용됐는지, AI의 판단이 치료 결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 오류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 할 수 있다. 개발자는 모델의 구조와 학습 방법을 설명하는 것에 집중하기 쉽지만, 환자에게는 자신의 권리와 치료 과정에 관한 정보가 더 중요하다.

    FDA, 캐나다 보건부와 영국 의약품·건강관리제품규제청이 공동으로 제시한 투명성 원칙도 정보를 단순히 공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의료진·환자·의료기관 등 사용자에게 적절한 시점과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을 강조한다. 제품의 목적과 성능, 한계, 데이터 특성, 업데이트 내용, 오류 가능성처럼 환자 안전과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정보가 대상별로 이해할 수 있게 제공돼야 한다는 것이다.

    설명가능성은 문서의 양을 늘리는 것과도 다르다. 수백 페이지의 기술문서를 제공하더라도 의료진이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찾지 못한다면 효과적인 설명이라고 보기 어렵다. 반대로 화면에 지나치게 많은 경고를 표시하면 사용자가 반복되는 경고를 무시하는 경고 피로가 발생할 수 있다. 필요한 정보를 실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순간에 제공하도록 사용자 경험을 설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영상진단 AI가 이상 가능성을 표시한다면 단순히 위험 점수만 보여주는 것보다, 어떤 목적으로 계산된 점수인지, 임계값에 따라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성능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환자군은 누구인지 함께 알려주는 편이 유용하다. 의료진이 AI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어야 하며, 그 판단을 기록하고 이후 성능 개선에 활용할 수 있는 구조도 필요하다.

    설명가능성은 환자 안전뿐 아니라 의료진의 책임을 보호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AI가 어떤 조건에서 작동하고 어느 정도의 신뢰성을 갖는지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료진에게 모든 판단 책임을 맡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제품을 공급하는 기업은 의료진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만큼 명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설명가능성이 의료 AI의 혁신을 방해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설명할 수 없는 기술이 모두 위험한 것은 아니며, 설명할 수 있다고 해서 모두 안전한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용 목적과 위험 수준에 맞는 설명을 제공하는 것이다. 의료 AI에서 설명가능성은 알고리즘을 단순하게 만드는 요구가 아니라, 기술의 성능과 한계를 임상적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로 바꾸는 과정이다.

    한 번의 허가보다 지속적인 감시가 중요해진다
    전통적인 의료기기는 허가를 받은 이후 기본적인 기능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AI 소프트웨어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변화에 따라 성능이 달라질 수 있다. 새로운 데이터를 이용해 모델을 재학습하거나 기능을 개선할 수 있으며, 운영체제와 병원 시스템이 변경돼도 결과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AI의 장점으로 꼽히는 학습과 개선 능력이 규제 관점에서는 새로운 과제가 되는 셈이다. 허가를 받은 시점의 모델과 실제로 사용되는 모델이 달라진다면 기존 검증 결과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작은 변경이 있을 때마다 처음부터 허가 절차를 반복하도록 하면 기술 개선이 지나치게 늦어질 수 있다.

    미국 FDA가 예정된 변경관리계획을 마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발사는 제품이 허가된 이후 어떤 부분을 변경할 수 있는지, 변경이 성능과 위험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변경된 모델을 어떤 방법으로 검증하고 관리할지를 사전에 제시할 수 있다. 규제기관이 이를 적절하다고 판단하면 정해진 범위 안에서 모델을 개선하면서도 안전성과 유효성을 관리할 수 있다.

    그러나 사전에 예상하지 못한 변화도 발생할 수 있다. 특정 지역에서 새로운 질병이 유행하거나 환자의 생활양식과 의료환경이 바뀌면 입력데이터의 분포가 달라진다. 병원이 새로운 영상장비를 도입하거나 검사 프로토콜을 변경해도 모델이 익숙하지 않은 데이터가 들어올 수 있다. 학습 당시에는 안정적이었던 성능이 시간이 지나며 낮아지는 데이터 드리프트와 모델 드리프트가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의료 AI에는 출시 후 감시 체계가 필수적이다. 전체 성능뿐 아니라 성별, 연령, 인종, 지역, 질병 중증도 등에 따라 오류율이 달라지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사용자 불만과 사고 보고뿐 아니라 AI의 권고가 의료진에 의해 얼마나 자주 수정되는지, 특정 환경에서 사용이 중단되는지도 중요한 신호가 될 수 있다.

    감시 결과 문제가 발견됐을 때 대응하는 절차도 마련해야 한다. 단순한 소프트웨어 오류라면 업데이트로 해결할 수 있지만, 특정 환자군에 지속적으로 불리한 결과가 나타난다면 사용 범위를 제한하거나 모델을 다시 검증해야 한다. 환자 안전에 중대한 위험이 예상된다면 제품 사용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결정도 필요하다.

    유럽연합의 AI 규제도 의료 목적의 상당수 AI 시스템을 고위험 영역에서 다루며 위험관리, 데이터 거버넌스, 기술문서, 기록 보존, 사용자 정보, 인간의 감독과 출시 후 모니터링을 중요한 요구사항으로 제시하고 있다. AI Act는 2024년 8월 발효됐으며, 의료 목적의 고위험 AI에는 의료기기 규정과 AI 규정이 함께 적용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지속적인 감시는 기업의 품질관리 방식도 바꾼다. 개발팀이 모델을 완성해 규제 담당자에게 넘기는 직선적인 개발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제품이 시장에 출시된 이후 수집되는 데이터와 사용자 경험이 다시 개발과 검증 과정으로 돌아오는 순환 구조가 필요하다.

    병원도 AI를 구매해 설치한 뒤 그대로 사용하는 수동적인 소비자에 머물 수 없다. 병원 내부에 AI 제품 목록을 만들고, 버전과 업데이트 이력을 관리하며, 성능 이상과 사용자 의견을 수집해야 한다. 중요한 의료 판단에 사용되는 제품일수록 정기적인 재평가와 사용 중단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의료 AI 시대의 허가는 안전성에 대한 영구적인 보증서가 아니다. 특정 시점과 조건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인됐다는 출발점에 가깝다. 기술과 데이터, 임상 환경이 계속 변하기 때문에 신뢰도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갱신해야 한다.

    규제 대응 능력이 의료 AI의 경쟁력이 된다
    규제 강화는 의료 AI 기업에 상당한 부담을 줄 수 있다. 다양한 환자군을 대상으로 임상 근거를 확보하고, 데이터의 출처와 품질을 관리하며, 개발 과정과 변경 이력을 문서화하려면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에는 기술개발 비용보다 규제 대응 비용이 더 큰 장벽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규제를 단순한 장애물로만 보는 것은 의료 AI 시장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의료기술은 환자의 생명과 건강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성능이 검증되지 않은 제품이 빠르게 확산된 뒤 문제가 발생하면 환자 피해뿐 아니라 병원과 산업 전체의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 신뢰를 잃은 시장에서는 우수한 기술도 도입되기 어렵다.

    앞으로 의료 AI 기업의 경쟁력은 알고리즘의 정확도만으로 결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어떤 데이터를 사용했는지 추적할 수 있는 능력, 환자군별 성능을 검증하는 능력, 모델 변경을 통제하는 능력, 의료진과 환자에게 한계를 설명하는 능력, 출시 후 문제를 발견하고 대응하는 능력이 함께 평가될 것이다.

    규제 대응을 개발 이후의 행정업무로 취급하는 기업과 개발 전략의 일부로 포함하는 기업의 격차도 커질 수 있다. 제품을 완성한 후 필요한 문서를 뒤늦게 작성하면 데이터와 의사결정의 근거가 남아 있지 않을 수 있다. 반면 개발 초기부터 품질관리와 검증 기준을 적용하면 규제 대응 자료가 개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축적된다. 문제를 조기에 발견해 수정할 수 있어 장기적으로는 개발 비용과 시장 진입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규제 대응 능력은 해외 진출에서도 중요한 자산이 된다. 미국과 유럽, 영국, 캐나다 등은 세부 규정에서 차이가 있지만 전 생애주기 관리, 양질의 데이터, 인간의 감독, 투명성, 사후 감시를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공통된 방향을 보이고 있다. 한 시장의 허가서류를 다른 시장에 그대로 제출할 수는 없더라도, 국제적인 원칙에 맞춰 품질관리 체계를 갖춘 기업은 여러 국가의 요구에 더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의료기관이 제품을 선택하는 기준도 바뀔 수 있다. 지금까지는 기능과 가격, 정확도가 주요 평가 요소였다면 앞으로는 개발사가 성능 자료를 얼마나 투명하게 제공하는지, 업데이트 이후에도 안전성을 보장하는지, 사고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질 것이다. 보험사와 투자자도 규제 위험과 책임 구조를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판단하는 핵심 요소로 볼 가능성이 크다.

    규제기관 역시 혁신을 막는 역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기술의 위험 수준에 따라 요구사항을 차등화하고, 기업이 준비해야 할 증거와 문서를 예측할 수 있도록 명확한 지침을 제공해야 한다. 동일한 기능을 두고 국가마다 지나치게 다른 기준을 적용하면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한다. 국제적인 규제 조화와 공통 원칙이 중요한 이유다.

    의료 AI의 다음 경쟁은 더 크고 복잡한 모델을 만드는 데만 있지 않다. 개발한 기술이 누구에게, 어떤 환경에서, 어떤 범위까지 안전하게 작동하는지를 입증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성능 저하와 오류를 지속적으로 발견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수정하거나 사용을 제한할 수 있는 운영 역량도 갖춰야 한다.

    규제기관의 AI 가이드라인 확대는 의료 AI 산업에 더 많은 문서를 요구하는 행정적 변화가 아니다. 기술 중심의 개발 문화를 환자 안전과 임상적 책임을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변화다. 기업에는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신뢰할 수 있는 제품과 그렇지 않은 제품을 구분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의료 AI가 실제 의료의 일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높은 정확도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데이터와 검증 과정이 투명해야 하고, 의료진이 기술의 한계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환자는 자신의 진료에 사용되는 AI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원인을 추적하고 책임 있게 대응할 수 있는 체계도 마련돼야 한다.

    정확도는 의료 AI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검증과 설명, 감시와 책임은 그 가능성이 환자의 신뢰로 이어지게 한다. 앞으로 의료 AI 시장에서 앞서가는 기업은 가장 화려한 기술을 먼저 선보인 기업이 아니라, 기술의 안전성과 가치를 가장 오랫동안 증명할 수 있는 기업이 될 것이다.

    Reference
    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January 2025, Artificial Intelligence-Enabled Device Software Functions: Lifecycle Management and Marketing Submission Recommendations.
    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June 2024, Transparency for Machine Learning-Enabled Medical Devices: Guiding Principles.
    U.S.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August 2025, Predetermined Change Control Plan for Artificial Intelligence-Enabled Device Software Functions.
    European Union, 2024, Regulation (EU) 2024/1689 Laying Down Harmonised Rules on Artificial Intelligence.
    European Commission, 2025, Interplay Between the Medical Devices Regulation, In Vitro Diagnostic Medical Devices Regulation and the Artificial Intelligence 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