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즈마 1,337초 유지: 인류가 ‘인공 태양’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지구가 직면한 가장 복잡한 문제 중 하나는 에너지다. 화석연료는 지구 온...


  • 플라즈마 1,337초 유지: 인류가 ‘인공 태양’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핵융합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
    지구가 직면한 가장 복잡한 문제 중 하나는 에너지다. 화석연료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며, 태양광이나 풍력은 날씨에 의존하는 간헐성 문제를 안고 있다. 이 딜레마 속에서 다시 주목받는 것이 바로 핵융합(fusion energy)이다.

    핵융합은 태양이 빛을 내는 원리와 같은 방식으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두 개의 가벼운 원자핵이 높은 온도와 압력에서 융합되어 무거운 원자핵이 될 때, '엄청난 에너지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방사능 폐기물이 거의 없고, 연료는 바닷물에서 얻을 수 있으며, 폭발 위험도 낮다.

    2025년 2월, 프랑스의 핵융합 장치 WEST(W Environment in Steady-state Tokamak)가 '1,337초(약 22분)' 동안 플라즈마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핵융합 실험 역사상 가장 긴 기록으로, 기존의 중국 기록(1,056초)을 넘어선 것이다. 이 실험은 단순한 시간 경쟁이 아니라, '핵융합의 상업화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앞당기는 중대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플라즈마란 무엇인가?
    핵융합을 하려면 수소 원자를 1억 도 이상의 고온으로 가열해야 하는데, 이때 원자들이 전자와 핵으로 분리되어 생기는 것이 플라즈마(plasma)다. 쉽게 말해, '기체보다 더 높은 에너지 상태의 제4의 물질'이다. 플라즈마는 자석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강력한 자기장을 만들어 그 안에 플라즈마를 ‘떠 있게’ 만드는 것이 핵융합 장치의 핵심 원리다.

    하지만 문제는 이 플라즈마가 극도로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조금만 제어에 실패해도 온도가 떨어지거나 벽에 닿아버리면서 핵융합 조건이 무너진다. 그래서 ‘얼마나 오랫동안 플라즈마를 유지할 수 있는가’는 '핵융합의 성패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지표'다.

    WEST의 핵심 기술: ‘장시간 안정성’ 확보
    프랑스 핵융합 연구소(CEA)는 WEST 장치에서 핵융합의 핵심 조건 중 하나인 장시간 플라즈마 유지(stationary plasma operation)를 실현하기 위해 몇 가지 혁신 기술을 도입했다.

    1. '텅스텐 내벽(W-all)'
    플라즈마는 수천 도의 고온이기 때문에 장치 내부 벽은 엄청난 열에 노출된다. WEST는 기존의 탄소 소재 대신 녹는점이 3,400도에 달하는 '텅스텐'을 내부 벽 재료로 채택해, 내구성과 안정성을 극대화했다. 이는 국제 핵융합 실험로 ITER에서도 동일하게 채택된 기술이다.

    2. '지속형 고주파 가열 시스템'
    플라즈마를 1억 도 이상으로 유지하려면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가해야 한다. WEST는 고주파 전자기파(마이크로파, RF wave)를 플라즈마에 주입하는 방식을 통해 외부에서 지속적인 열을 공급했다. 이는 마치 전자레인지가 음식 속 물 분자를 흔들어 데우듯, 플라즈마 입자들을 흔들어 에너지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3. '실시간 자기장 피드백 제어'
    플라즈마는 자기장 속에 갇혀 있어야 유지된다. WEST는 '플라즈마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그에 따라 자기장을 즉각적으로 조절하는 피드백 제어 시스템을 적용했다. 이는 마치 줄타기 곡예사가 순간순간 중심을 잡는 것처럼, 끊임없이 균형을 유지하는 시스템이다.

    기록의 의미: ‘실험’에서 ‘실현’으로
    이번 실험은 단순히 숫자의 싸움이 아니다. 과거 핵융합 실험은 몇 초에서 수십 초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수 분, 수십 분 단위로 넘어오면서, '실제 발전소에서 24시간 가동 가능한 시스템의 실현 가능성'을 논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이전까지는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주장이 많았지만, 이제는 "실제로 작동하는" 장치가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 특히 국제 핵융합 프로젝트인 ITER(프랑스 카다라슈 소재)는 2035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번 WEST의 실험 결과는 ITER의 설계 검증 및 기술 이전에 직접적인 참고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핵융합 전략과 연결되는 지점
    한국 역시 K-STAR(한국형 초전도 핵융합 연구장치)라는 이름의 실험장치를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손꼽히는 핵융합 연구 강국이다. 특히 2021년에는 1억 도의 플라즈마를 30초 동안 유지하는 데 성공해 국제적으로 주목받은 바 있다.

    프랑스 WEST의 실험 결과는 한국에도 다음과 같은 전략적 시사점을 던진다:

    'ITER 참여국으로서 기술 공유 확대': 한국은 ITER 7개 주요 회원국 중 하나다. WEST는 ITER의 기술 테스트베드이므로, 이번 기록은 한국이 참여 중인 국제 공동 개발의 신뢰성과 실용성을 뒷받침해준다.

    '핵심 소재·부품 자립화': 텅스텐 내벽, 고주파 가열 장치, 자기장 제어기술 등은 모두 향후 핵융합 발전소 건설 시 필수 요소다. 한국이 관련 부품의 국산화에 성공한다면, 향후 상용 핵융합 발전소 시장에서도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탄소중립을 위한 대체 에너지 투자 방향':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한 한국은 신재생에너지 외에도 대체 에너지원을 모색 중이다. 핵융합은 기저부하 전력 확보 수단으로서 신뢰성과 안전성을 모두 갖춘 에너지로 평가받는다.

    넘어야 할 과제: 에너지 이득률, 비용, 안정성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가장 큰 과제는 에너지 이득률(Q값)이다. 이는 연료에 넣은 에너지 대비 얻은 에너지의 비율인데, 현재는 대부분 1 이하로, '넣은 것보다 더 많이 나오는 발전'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WEST 역시 장시간 플라즈마는 유지했지만, 에너지 출력은 아직 연구 단계다.

    또한 플라즈마가 조금이라도 벽에 닿으면 순간적으로 냉각되어 장치가 손상될 수 있으며, 이를 방지하기 위한 초정밀 제어 시스템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장비의 크기와 비용이 너무 커 상용화까지는 여전히 많은 기술적 장벽이 남아 있다.

    인류는 ‘두 번째 태양’을 만들 수 있을까?
    WEST의 기록은 단순한 기술적 성취를 넘어, '에너지에 대한 인간의 상상력이 얼마나 현실에 가까워졌는지를 보여주는 이정표'다. 플라즈마를 1,337초간 통제했다는 것은, 우리가 더 이상 이론이나 모형에 의존하지 않고 실제 조건에서 ‘인공 태양’을 구현할 수 있는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뜻한다.

    앞으로 핵융합은 단순한 과학 실험이 아니라, '국가의 에너지 주권과 산업 생태계를 좌우할 미래 기술'이 될 것이다. 한국 역시 이 변화의 흐름 속에서, '전략적 기술 투자와 국제 공동연구를 통한 선도국가의 입지'를 다져야 할 때다. 핵융합은 더 이상 미래의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이 될 운명을 앞두고 있는 기술'이다.

    * Reference
    Fusion Engineering and Design, February 2025, “Demonstration of 1337 seconds of stationary plasma in WEST with full tungsten wall and RF heating,” CEA-WEST Collabor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