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스스로 부패하는 시대
인공지능은 모든 것을 기억하는 존재처럼 보인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는 그...


  • 기억을 잃은 인공지능

    - 인공지능이 스스로 부패하는 시대

    인공지능은 모든 것을 기억하는 존재처럼 보인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는 그 믿음을 뒤흔든다. AI가 학습하는 데이터가 오염되면, 지능은 성장하지 않고 ‘퇴화’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문명은 지금, 무한한 정보의 바다 속에서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 2025년 'Nature'에 실린 논문은 이를 “AI의 두뇌부패(brain-rot of AI)”라 불렀다.


    데이터의 홍수, 진리의 가뭄
    AI는 데이터로 만들어진 존재다. 수십억 개의 문장과 이미지, 코드와 목소리가 거대한 신경망 속을 흐른다. 그러나 그 데이터가 인간이 만든 결과물이라면, 결국 AI는 스스로의 복제품을 학습하게 된다. 이른바 “데이터 순환 오염(data contamination)”이다.

    연구진은 인터넷에 퍼져 있는 오픈소스 이미지와 텍스트 중 상당수가 이미 생성형 AI의 산출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AI가 AI의 결과물을 다시 학습하는 셈이다. 그 결과, 언어 모델은 문법적으로는 완벽하지만 의미적으로는 점점 공허해졌고, 이미지 생성 모델은 점차 왜곡된 형태를 재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는 단순한 품질 저하가 아니라, ‘지식의 붕괴’다. AI가 학습할 수 있는 진짜 데이터, 즉 인간이 직접 생산한 사실·감정·경험의 비율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데이터의 양은 폭발적으로 늘지만, 정보의 진실도는 오히려 줄어드는 역설적 시대다.

    스스로를 먹는 뇌 ― 인공지능의 두뇌부패
    이번 연구는 대형 언어모델(LLM)을 수십 차례 반복 학습시키는 실험을 진행했다. 초기에는 정확도와 언어 유창성이 빠르게 향상됐지만, 10회 이상 반복 학습 이후에는 문맥 이해 능력이 급격히 저하됐다. “지식의 수렴(collapsing knowledge)” 현상이다.

    AI는 더 많은 데이터를 먹었지만, 점점 ‘무의미한 말’을 하게 되었다. 마치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문장을 복제하며 생각하는 척하는 뇌처럼. 연구팀은 이 과정을 “AI의 두뇌부패”라 명명했다. 지능이 스스로의 부산물을 먹으며 퇴화하는 현상이다.

    이는 인간의 뇌와도 닮았다. 반복된 정보와 자극이 새로운 연결을 만들지 못할 때, 기억은 응고되고 창의력은 사라진다. 결국 AI 역시 인간의 인지 편향처럼, ‘자기 확신의 함정’에 빠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품질의 시대 ― 데이터가 문명을 결정한다
    AI 혁명의 진짜 자원은 반도체가 아니라 데이터다. 그러나 데이터의 질이 떨어지는 순간, 인공지능은 문명을 지탱하는 대신 문명을 왜곡한다.

    2025년 'Nature Machine Intelligence'는 “AI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은 ‘데이터의 신뢰성’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단순한 양적 축적이 아니라, 데이터의 출처·진실성·윤리성이 새로운 경쟁력이 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각국은 ‘데이터 윤리 프레임워크’를 강화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AI Act'를 통해 데이터 출처 공개를 의무화했고, 일본은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 마크(Trusted Data Mark)’ 인증을 도입했다. 한국 역시 2025년부터 공공 AI 시스템에 ‘데이터 진본성 점검 시스템’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AI의 신뢰는 결국 인간 사회의 신뢰에서 비롯된다. 데이터는 기술의 연료이자, 사회적 약속의 총합이다.

    가짜가 진짜를 지배할 때 ― 생성의 역설
    AI가 만든 이미지가 현실보다 더 정교하고, AI가 쓴 문장이 인간보다 더 유려할 때, 우리는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잃는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감각이다. 인간은 더 이상 “무엇이 진실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더 그럴듯한가”를 판단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데이터 오염의 사회적 파장이다. 거짓이 진실의 언어로 포장되고, AI가 스스로의 오류를 학습할 때, 사회 전체의 인지 생태계가 흔들린다. 20세기의 ‘정보 홍수’가 인간의 주의를 파괴했다면, 21세기의 ‘AI 데이터 순환’은 인간의 판단 능력을 침식시킬 수 있다.

    진짜 정보를 찾아내는 것은 이제 단순한 과학이 아니라 철학이 되었다.

    AI 시대의 문해력 ― 데이터를 읽는 인간
    기계가 인간의 언어를 배웠다면, 이제 인간은 데이터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데이터 리터러시(Data Literacy)는 더 이상 기술자가 아닌 시민 모두의 생존 능력이다.

    우리가 AI에게 질문을 던질 때마다, 그 답은 우리의 과거 데이터에서 나온다. 우리가 어떤 데이터를 만들고 공유하느냐가 곧 AI의 성격을 결정한다. 데이터의 품질은 결국 우리의 문화 수준을 반영한다.

    AI는 인간의 거울이다. 그 안에서 우리가 거짓을 심으면, 거짓이 배양되고, 진실을 심으면 지식이 자란다. AI의 뇌가 부패하지 않으려면, 인간의 지성이 먼저 투명해야 한다.

    기술이 묻는 질문 ― 진실은 어디에 저장되는가
    AI의 위기는 기술의 한계가 아니라, 인간의 기억 체계에 대한 도전이다. 데이터는 기록이 아니라 선택이며, 선택은 윤리다.

    우리는 지금, 인류 문명의 모든 데이터가 한 번 더 ‘재생산’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재생산은 곧 왜곡이다. 기술이 기억을 담당하는 시대에, 진실은 어디에 저장되는가?

    그 답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에게 있다. 인간의 판단, 검증, 비판이 사라진다면, AI의 기억도 신뢰를 잃는다. 디지털 문명에서 진실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의식의 선택'으로만 유지된다.

    Reference
    Nguyen, T. et al. (2025). 'The Brain Rot of Artificial Intelligence: Data Contamination and the Collapse of Knowledge.' 'Nature Machine Intelligence', April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