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수증기(Forest Vapor), 보이지 않는 비의 순환이 말해주는 것
숲은 고요해 보이지만, 끊임없이 숨을 쉰다. 나무는 물을 마시고, 하늘로...


  • 하늘로 흐르는 숲

    - 숲의 수증기(Forest Vapor), 보이지 않는 비의 순환이 말해주는 것

    숲은 고요해 보이지만, 끊임없이 숨을 쉰다. 나무는 물을 마시고, 하늘로 돌려보낸다. 그 수증기가 구름이 되고, 수천 킬로미터를 흘러 다른 땅에 비를 내린다. 최근 'Nature'에 발표된 연구는, 숲의 이 호흡이 단지 생태계 내부의 순환이 아니라 '지구 기후와 식량 체계 전체를 연결하는 대기적 네트워크'임을 밝혔다.


    보이지 않는 강, 하늘 위의 흐름
    대기는 또 하나의 강이다. 물은 땅을 흘러 바다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 나무를 통해 공중으로 솟아올라 다시 흐른다. 이른바 '‘대기강(atmospheric river)’', 즉 공기 중의 수증기 흐름이 그것이다.

    연구진은 위성 데이터와 기후 모델링을 통해, 아마존·콩고·보르네오 등 대규모 열대림에서 증발한 수증기가 바람을 타고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의 강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예컨대 아마존 북부의 증발수는 남미 남부의 대두(soybean) 경작지의 비를 만들어내고, 동남아의 열대림 수증기는 인도 동부의 몬순(계절풍) 강수량을 조절한다.

    즉, 숲은 단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탄소 저장소’가 아니라, '비를 만드는 생명기관'이다. 나무 한 그루가 수백 리터의 수분을 하늘로 보낼 때, 그 작은 증기가 타국의 농작물과 강의 수위를 바꾼다.

    국경을 넘어선 기후의 언어
    이 연구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기후의 연결성(connectivity)'이다. 한 지역의 산림이 파괴되면, 그 피해는 국지적이지 않다. 수증기의 흐름이 끊기면,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강수 패턴이 깨지고, 가뭄이 발생하며, 식량 생산이 감소한다.

    과학자들은 이를 ‘기후 텔레커넥션(teleconnection)’이라 부른다. 지구의 대기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작동한다. 브라질의 벌목이 아프리카의 옥수수 생산량을 줄이고, 동남아의 산불이 호주의 비 구름을 약화시킬 수 있다.

    이제 ‘숲의 국경’은 존재하지 않는다. 환경문제는 더 이상 지역적 현상이 아니라, '지구적 상호의존 시스템의 균열'로 봐야 한다.

    나무의 숨, 물의 순환
    나무는 단순한 생물학적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지구의 순환기관(circulatory organ)'이다. 식물의 증산(evapotranspiration)은 땅속 수분을 하늘로 옮기고, 구름을 만들어 다시 비로 돌려보낸다. 이는 곧 지역 물순환(local hydrological cycle)의 핵심이며, 기후 안정성의 기초다.

    연구팀은 이 과정을 정량화했다. 대형 숲 지대가 사라질 경우, 인근 지역의 연간 강수량은 최대 20% 감소하며, 그 영향은 바람이 부는 방향을 따라 다른 대륙으로 확산될 수 있다. 즉, 숲이 줄면 물이 사라지고, 물이 사라지면 곡물이 사라진다.

    이 발견은 우리가 숲을 ‘탄소 흡수원(carbon sink)’으로만 이해해온 시각을 바꾼다. 숲은 공기를 정화할 뿐 아니라, '기후를 설계하고, 식량을 키우는 보이지 않는 인프라'다.

    기후위기 시대의 식량안보
    기후변화와 산림파괴가 동시에 진행되는 시대에, 이 연구는 명확한 경고를 던진다. 숲의 손실은 곧 '식량의 손실'이다. 비를 만드는 숲이 사라지면, 농작물의 생태적 기반이 무너진다.

    FAO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전 세계 농경지의 40% 이상이 ‘수분 스트레스(water stress)’ 상태에 들어섰다. 단순히 강수량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비의 패턴이 깨진 것'이다. 이는 숲의 감소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산림보호는 이제 환경보전이 아니라 '식량안보 전략'이 되었다. 미래의 농업정책은 기후모델링과 수증기 이동 경로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비를 관리하는 것은 곧 숲을 관리하는 일이다.

    보이지 않는 강의 윤리
    숲이 만든 수증기는 인류가 공유하는 자산이다. 그러나 그 흐름을 지키는 일에는 책임이 따르지 않는다. 한 나라가 숲을 베어내면, 다른 나라의 농민이 가뭄을 견뎌야 한다. 이것이 '기후 윤리(Climate Ethics)'의 새로운 쟁점이다.

    대기 속의 수증기는 국적이 없다. 그러나 우리의 선택에는 경계가 있다. 기후 정의는 이제 탄소만이 아니라 '물과 비의 분배'로 확장되어야 한다.

    숲을 지키는 것은 나무를 보호하는 일이 아니라, 하늘의 강을 지키는 일이다. 비는 숲의 기억이다. 그 기억이 사라지면, 인간의 미래도 흐려진다.

    Reference
    Rodriguez, M. et al. (2025). 'Forest Evaporation and Transboundary Precipitation: How Vegetation Shapes Distant Rainfall Patterns.' 'Nature', September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