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층 사다리가 움직이는 곳, 특허도 늘어났다
혁신은 연구개발비가 많은 곳에서만 탄생하지 않는다. 부모보다 더 배우고 ...



  • 계층 사다리가 움직이는 곳, 특허도 늘어났다

    - 부모의 학력을 넘어설 기회가 지역의 혁신을 깨운다

    혁신은 연구개발비가 많은 곳에서만 탄생하지 않는다. 부모보다 더 배우고 새로운 직업에 도전할 수 있는 지역에서는 이전까지 묻혀 있던 재능도 연구실과 기업으로 흘러 들어간다. 유럽 36개국의 교육 이동성과 특허를 추적한 연구는 공정한 기회가 어떻게 새로운 아이디어로 바뀌는지를 보여준다.

    [Key Message]
    * 기회의 평등은 혁신의 기반이다. 부모의 학력이 자녀의 교육과 직업을 강하게 결정하면 많은 재능이 연구실과 기업에 도달하지 못한다. 계층 이동성을 높이는 일은 복지를 넘어 사회가 가진 인재를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성장전략이다.

    * 교육의 확대와 계층 이동성은 같은 개념이 아니다. 대학 졸업자가 늘어나더라도 저학력 부모의 자녀가 계속 교육 분포의 아래쪽에 머문다면 상대적인 이동성은 개선되지 않는다. 평균 교육 수준뿐 아니라 누가 어떤 교육과 직업에 접근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 이동성이 높은 지역에서는 특허 활동도 활발했다. 유럽 지역을 분석한 결과, 세대 간 교육 지속성 지표가 0.1 낮아질 때 특허 수는 약 4~23% 증가하는 관계가 관찰됐다. 여러 분석 조건을 달리한 420개 추가 추정에서도 전반적으로 같은 방향이 확인됐다.

    * 가장 큰 혁신 잠재력은 기회가 막혀 있던 지역에 숨어 있다. 이동성 향상과 혁신의 관계는 계층 이동성이 낮거나 중간 수준인 지역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났다. 첫 번째 장벽을 제거하는 일이 이미 기회가 충분한 곳에 문 하나를 더 만드는 것보다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 계층 사다리는 재능을 이동시키는 경제 인프라다. 학교, 장학금, 지역대학, 진로 정보와 기업의 열린 채용은 개인의 상승만을 지원하지 않는다. 가정환경에 묻혀 있던 아이디어가 교육과 연구, 창업과 특허로 이동할 수 있는 길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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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어난 집이 아이디어의 운명을 가를 때
    발명가가 될 만한 재능을 지닌 두 아이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한 아이의 부모는 대학을 졸업했고 집에는 책과 컴퓨터가 있다. 부모의 지인을 통해 엔지니어와 연구자를 만나고, 방학이면 과학 캠프에 참가한다. 어떤 학교와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지 조언을 얻을 수 있고, 한 번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시간과 비용이 있다.

    다른 아이도 기계를 분해하고 조립하기를 좋아한다. 고장 난 선풍기의 모터로 장난감을 만들고, 스마트폰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끊임없이 궁금해한다. 하지만 부모는 대학에 진학한 경험이 없고 주변에는 연구자나 기술자가 없다. 진학 정보를 구하기 어렵고, 대학에 가더라도 등록금과 생활비를 감당해야 한다.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해 일찍 취업해야 한다면 오랜 교육과 훈련이 필요한 진로는 선택지에서 밀려난다.

    두 아이의 잠재력이 비슷하더라도 성인이 된 뒤의 자리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한 사람은 연구실과 기술기업으로 향하지만, 다른 사람은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사용하지 못하는 일자리에 머무른다. 이때 사라지는 것은 개인의 기회만이 아니다. 세상에 나오지 못한 발명, 설립되지 못한 기업,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함께 사라진다.

    혁신을 설명할 때는 보통 연구개발비, 벤처투자, 명문대학, 산업단지를 먼저 떠올린다. 물론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연구소를 세워도 그곳으로 들어가는 문이 특정한 배경의 사람들에게만 열려 있다면 사회는 보유한 재능의 일부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부모의 학력과 경제적 지위가 자녀의 교육 수준을 강하게 결정하는 지역에서는 능력보다 출신 배경이 인재 선발 장치로 작동한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재능의 오배분’으로 설명한다. 좋은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교육과 직업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유리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현상이다. 개인에게는 불공정이고, 기업에는 인재 손실이며, 지역경제에는 생산성과 혁신의 손실이다. 기회의 불평등은 도덕적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경제가 가진 능력을 충분히 사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적 비용이다.

    부모와 자녀의 학력을 유럽 지도에 올리다
    이 관계를 본격적으로 추적한 연구가 2026년 7월 국제학술지 《Nature》에 발표된 ‘유럽 지역의 이동성과 혁신 관계(Intergenerational Mobility Fosters Innovation in Europe)’이다. 사라 맥나마라(Sarah McNamara), 귀도 나이트회퍼(Guido Neidhofer), 패트릭 레너트(Patrick Lehnert)는 유럽의 세대 간 교육 이동성이 시간과 지역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으며, 그 차이가 혁신 성과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를 분석했다.

    연구의 출발점은 간단하지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부모의 배경은 자녀의 미래를 얼마나 강하게 붙잡고 있는가. 한 국가의 평균 교육 수준만으로는 답을 찾기 어려웠다. 대학 졸업자가 늘어났더라도 고학력 부모의 자녀가 여전히 좋은 교육과 직업을 차지한다면 기회의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 평균이 비슷하더라도 수도권과 산업도시, 농촌과 쇠퇴 지역의 사정은 전혀 다를 수 있었다.

    연구진은 이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 ‘유럽 공간분해 세대 간 이동성 지도’, 즉 ‘EUROPE-IGM-ATLAS’를 새로 구축했다. 유럽사회조사가 2002년부터 2023년까지 실시한 11차례의 조사에서 응답자와 부모의 교육 정보를 모은 뒤, 서로 다른 국가와 시기의 자료를 비교할 수 있도록 조정했다. 부모의 교육연수와 자녀의 교육연수가 얼마나 강하게 연결되는지를 계산해 세대 간 교육 이동성을 측정한 것이다.

    부모의 학력이 자녀의 학력을 거의 그대로 결정한다면 ‘세대 간 지속성’은 높고 이동성은 낮다. 반대로 부모가 학교를 오래 다니지 못했더라도 자녀가 자신의 능력에 맞는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지속성은 낮고 이동성은 높다. 여기서 말하는 이동성은 단순히 대학 졸업자가 늘어났다는 뜻이 아니다. 태어난 가정의 교육적 배경을 넘어설 가능성이 얼마나 열려 있는지를 가리킨다.

    분석 범위는 상당히 넓었다. 연구진은 유럽 36개국을 225개 소지역 또는 108개 중지역으로 나누고, 1985년부터 2025년까지의 연간 지표를 구성했다. 비교 대상은 1940~1959년, 1960~1979년, 1980~1999년에 태어난 세 집단이었다. 서로 다른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이 부모보다 얼마나 더 배우고 사회적 위치를 바꿀 수 있었는지를 지역 단위로 추적했다.

    한 사람의 교육 수준이 어느 해의 경제성과에 영향을 주는지도 세심하게 반영했다. 1950년에 태어난 사람이 스무 살 무렵 노동시장에 들어와 수십 년 동안 경제활동을 한다면, 그 사람의 교육 기회는 특정한 한 해가 아니라 장기간 지역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연구진은 각 세대가 노동시장에 진입하고 경험을 쌓은 뒤 은퇴하는 흐름을 가중치로 계산해 세대별 자료를 연간 이동성 지표로 변환했다. 정지된 사진에 가까웠던 교육 이동성 자료를 시간에 따라 움직이는 영상으로 바꾼 셈이다.

    다음 단계에서는 기회의 지도 위에 혁신의 지도를 겹쳤다. 혁신 성과는 단순한 설문이나 기업의 주관적 평가가 아니라 지역별 특허 출원 수, 등록 특허 수, 다른 특허에 인용된 정도를 반영한 특허 수로 측정했다. 특허가 혁신의 모든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국가와 지역을 장기간 비교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지표라는 장점이 있다.

    혁신 분석에는 137개 지역에서 확보한 23만3,057건의 관측자료가 사용됐다. 옛 바르샤바조약기구에 포함됐던 지역은 체제 전환의 영향을 고려해 1992년부터 2020년까지, 나머지 지역은 1985년부터 2020년까지 추적했다. 평균 교육 수준과 교육 불평등, 지역별 고유한 차이, 시간에 따른 공통 변화, 국가별 추세 등 특허 활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조건도 함께 통제했다.

    연구진은 계산 방법과 분석 대상을 바꿔가며 결과가 유지되는지도 확인했다. 특허 출원 수 대신 실제 등록된 특허를 사용하고, 단순한 특허 수 대신 인용도를 반영했으며, 이동성 지표의 구성 방식과 이주민 포함 여부도 달리했다. 이렇게 실시한 추가 분석은 420개에 이르렀다. 그 가운데 약 89%에서 낮은 세대 간 지속성, 다시 말해 높은 교육 이동성과 특허 활동 사이의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관계가 확인됐다.

    여러 조건을 달리한 분석에서도 같은 흐름이 반복됐다는 점은 연구의 강점이다. 유럽 전역을 하나로 묶어 비교하지 않고 국가 내부의 지역 차이와 수십 년 동안의 변화를 함께 살폈다는 점도 기존 연구와 구별된다. 다만 관찰자료를 이용한 분석인 만큼 계층 이동성이 특허 증가를 일방적으로 일으켰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관찰되지 않은 지역적 특성이 두 현상에 동시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연구가 보여준 것은 세대 간 교육 이동성이 높은 지역에서 혁신 성과도 일관되게 높게 나타났다는 강하고 견고한 관계였다.

    대학 졸업자가 늘어도 순위는 그대로였다
    유럽의 교육 기회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분명히 확대됐다. 젊은 세대로 갈수록 부모보다 더 많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 늘어났으며, 특히 교육 수준이 낮은 가정에서 성장한 자녀의 학업 성취가 개선됐다. 부모의 교육연수와 자녀의 교육연수가 닮는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는 가장 나이 많은 집단과 가장 젊은 집단 사이에서 평균 0.459에서 0.355로 낮아졌다.

    겉으로 보면 계층 사다리가 상당히 움직인 듯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함정이 있었다. 교육을 받은 절대적인 기간은 길어졌지만 사회 안에서 차지하는 상대적 순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 세대 대부분이 중학교까지만 다녔고 자녀 세대 대부분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마을을 생각해보자. 교육 수준은 전체적으로 상승한다. 하지만 교육 수준이 낮았던 가정의 자녀가 여전히 또래 집단의 아래쪽에 있고, 대학을 졸업한 부모의 자녀가 계속 위쪽을 차지한다면 상대적인 이동성은 거의 개선되지 않는다. 계단 전체가 한 층 올라갔을 뿐, 사람들이 서 있는 순서는 그대로인 셈이다.

    실제로 교육 분포 안의 상대적 위치 변화를 반영한 표준화 지표에서는 세대 간 지속성이 0.415에서 0.400으로 소폭 낮아지는 데 그쳤다. 이 변화는 통계적으로도 뚜렷하지 않았다. 더 많은 사람이 대학에 진학했다고 해서 출신 배경의 영향이 자동으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학위가 보편화되면 학위의 종류와 대학의 명성, 전공, 대학원 진학, 인턴 경험, 인적 네트워크가 새로운 구분선으로 등장한다. 같은 대학 졸업자라도 한 사람은 어릴 때부터 축적한 정보와 관계를 이용해 연구직에 진입하고, 다른 사람은 그 문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뒤늦게 알게 된다. 교육 기회를 판단하려면 졸업장의 숫자뿐 아니라 누가 어떤 교육을 받고 어디로 이동하는지까지 살펴야 하는 이유다.

    이 결과는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 불평등도 자연스럽게 줄어든다”는 낙관론에 제동을 건다. 평균 교육연수의 상승은 중요한 성취지만 기회의 평등과 같은 말은 아니다. 모두가 이전보다 높이 올라간 사회에서도 부모의 배경이 자녀의 상대적 위치를 결정하는 구조는 남을 수 있다.

    계층 사다리가 움직이자 특허가 늘어났다
    연구진이 이동성 지도와 특허 지도를 겹치자 일관된 흐름이 나타났다. 부모와 자녀의 교육 수준이 강하게 묶인 지역에서는 특허 활동이 적었고, 그 연결이 약한 지역에서는 특허 활동이 더 활발했다. 평균 교육 수준과 교육 불평등, 지역과 시기의 차이, 국가별 추세 등을 통제한 뒤에도 이러한 관계가 유지됐다.

    그 규모도 작지 않았다. 부모와 자녀의 교육 수준이 닮는 정도를 나타내는 지속성 지표가 0.1 낮아질 때 특허 수는 약 4~23% 증가하는 관계가 관찰됐다. 0.1은 유럽에서 가장 나이 많은 세대와 가장 젊은 세대 사이에 나타난 평균적인 변화와 비슷한 크기였다.

    숫자의 의미를 가상의 지역으로 바꿔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매년 100건의 특허를 내던 지역에서 부모의 학력이 자녀의 교육을 결정하는 힘이 유럽에서 실제로 관찰된 수준만큼 약해졌다고 가정해보자. 연구에서 나타난 관계를 단순 적용하면 특허는 약 104건에서 123건 수준으로 늘어날 수 있다. 물론 이를 모든 지역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예측 공식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계층 이동성 외에도 대학과 기업, 산업구조, 연구개발 투자, 인구 이동이 특허 수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다만 기회의 구조와 혁신 성과 사이의 관계가 경제적으로도 무시하기 어려운 크기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두 현상의 연결고리는 ‘재능의 활용’에서 찾을 수 있다. 혁신을 하나의 긴 선발 과정으로 보면 어린아이가 과학에 흥미를 느끼는 단계부터 좋은 수업을 받고, 대학에 진학하고, 연구 경험을 쌓고, 기술기업에 취업하거나 창업하기까지 수많은 문을 통과해야 한다. 문 하나를 지날 때마다 가정환경에 따른 격차가 벌어진다면 마지막 연구실에 도착하는 인재의 구성은 좁아진다.

    반대로 장학제도와 공교육, 지역대학, 직업훈련, 진로 정보가 배경의 불리함을 완화하면 더 많은 사람이 이 과정에 참여한다. 혁신의 문 앞에 도착하는 후보가 많아지고, 서로 다른 삶의 경험에서 출발한 문제의식도 연구개발 현장으로 들어온다. 사회가 갑자기 더 많은 천재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이미 존재했지만 발견되지 않았던 재능을 덜 놓치게 되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이동성과 평균 교육 수준을 구분하는 일이다. 대학 졸업자가 많은 지역이라고 해서 반드시 이동성이 높은 것은 아니다. 고학력 부모의 자녀만 좋은 대학과 연구직에 진입한다면 평균 교육 수준은 높아도 재능의 선발 범위는 좁다. 반대로 부모의 학력과 관계없이 능력 있는 사람이 교육 기회를 얻는 지역에서는 더 넓은 인재 풀에서 발명가와 창업가가 등장할 수 있다.

    연구실에 도착하지 못한 ‘사라진 발명가들’
    새로운 배터리를 개발하는 능력은 대학 연구실에 들어간 순간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호기심, 수학과 과학을 배울 기회,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여유, 자신과 비슷한 배경에서 성장한 역할모델, 기술 분야의 진로를 알려주는 교사와 선배가 오랜 시간 쌓여야 한다.

    탄광이나 공장이 문을 닫은 지역에서 자란 학생이 에너지 기술에 뛰어난 감각을 갖고 있다고 해보자. 오래된 보일러의 효율을 높이거나 전력 낭비를 줄이는 방법을 누구보다 현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지역 학교에 심화 과학 수업이 없고, 대학이 멀리 있으며, 가족의 생활비까지 책임져야 한다면 그 경험은 특허로 이어지지 못한다. 혁신의 씨앗은 있었지만 이를 키울 경로가 없었던 것이다.

    반대의 상황도 가능하다. 부모가 대학을 나오지 않았더라도 학교에서 좋은 과학 교사를 만나고, 지역대학의 실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원받는다면 진로의 반경이 넓어진다. 대학의 산학협력 프로그램을 통해 기술기업에 들어가고, 현장에서 발견한 문제를 바탕으로 새로운 공정을 개발할 수도 있다. 이동성이 높은 지역은 이런 가능성을 개인의 행운으로 남겨두지 않고 제도적인 통로로 바꾼다.

    혁신에는 ‘노출’도 중요하다. 발명가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아이에게 발명은 현실적인 직업이 아니라 영화 속 역할처럼 느껴질 수 있다. 반면 부모의 동료와 이웃이 연구자이거나 학교가 기업·대학과 연결돼 있다면 혁신은 눈앞의 선택지가 된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상상하는 능력조차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부모의 교육 수준은 돈만이 아니라 정보와 기대의 차이도 만든다. 어느 대학에 지원해야 하는지, 장학금은 어디에서 찾는지, 연구실 인턴은 어떻게 구하는지, 실패했을 때 다음 경로는 무엇인지 아는 가정과 그렇지 못한 가정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정보 격차가 존재한다. 같은 성적을 받은 학생도 한 사람은 여러 선택지를 비교하지만 다른 사람은 가장 가까운 길 하나만 바라보게 된다.

    따라서 기회의 불평등은 시험점수의 격차보다 넓은 문제다. 정보와 기대, 관계, 실패를 감당할 여유까지 포함한다. 등록금만 낮춘다고 모든 장벽이 사라지지 않으며, 대학 입학만 늘린다고 연구자와 발명가의 구성이 곧바로 다양해지는 것도 아니다. 교육에서 직업으로 이어지는 전 과정의 문턱을 함께 살펴야 한다.

    기업에도 같은 통찰이 적용된다. 늘 같은 대학과 경력, 비슷한 인적 네트워크에서만 사람을 뽑는 기업은 검증된 인재를 선택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기회를 먼저 얻은 사람을 능력이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오인할 수 있다. 채용 경로를 넓히고 잠재력을 평가하며 입사 후의 훈련 기회를 제공하는 일은 사회공헌에 그치지 않는다. 더 큰 인재 풀을 활용하는 혁신 전략이 된다.

    잘나가는 혁신도시에서는 공식이 달랐다
    교육 이동성이 높을수록 특허가 많다는 관계가 유럽의 모든 지역에서 똑같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장기간 특허 수가 상위 10%에 속한 거대 혁신 허브에서는 두 변수의 관계가 약하거나 일부 분석에서 반대 방향으로 나타났다. 얼핏 보면 기회의 평등이 혁신에 도움이 된다는 전체 결과와 충돌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미 완성된 혁신 허브의 작동 방식을 생각하면 차이를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지역에는 대학과 연구소, 투자자, 숙련된 노동자,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오랜 시간 밀집해 있다. 한 기업의 기술자가 다른 기업으로 옮기고, 연구자가 창업하며, 콘퍼런스와 비공식적인 만남에서 정보가 교환된다. 외부에서 인재가 계속 유입되고 전문 서비스와 자본시장도 발달한다. 혁신은 지역 내부의 교육 이동성뿐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축적된 집적 효과와 지식 네트워크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세계적인 기술도시에 사는 저소득층 아이가 여전히 좋은 기회를 얻지 못하더라도, 그 도시는 다른 지역과 국가에서 이미 교육받은 인재를 끌어들여 높은 특허 실적을 유지할 수 있다. 도시의 혁신 성적표는 화려하지만 그곳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 기회의 문이 열린 것은 아닐 수 있다. 높은 특허 수와 공정한 기회가 언제나 같은 방향을 가리키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최상위 혁신가의 생산성이 매우 크다는 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소수의 발명가와 과학자가 전체 특허와 연구성과의 상당 부분을 만들어내는 구조에서는 평균적인 인재 풀의 변화가 단기간의 특허 수에 곧바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미 강력한 연구조직과 핵심 발명가를 보유한 지역에서는 계층 이동성보다 인재의 집중과 지식의 파급효과가 단기 성과를 더 크게 좌우할 수 있다.

    그렇다고 혁신 허브에서 기회의 평등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특허 수만으로 포착되지 않는 질문이 남는다. 누가 혁신에 참여하는지, 어떤 문제가 연구 대상으로 선택되는지, 성장의 혜택이 지역 주민에게 돌아가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외부 인재의 유입만으로 번영하는 도시는 높은 성과를 유지할 수 있지만, 내부의 계층 사다리가 무너지면 주거비 상승과 사회적 분리, 인재 기반의 취약성이라는 문제를 안게 된다.

    연구에서 이동성 향상의 효과는 이동성이 낮거나 중간 수준인 지역에서 특히 크게 나타났다. 기회가 이미 넓게 열린 곳에 문 하나를 추가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이 막혀 있던 곳에서 첫 번째 장벽을 제거할 때 더 큰 변화가 나타난다는 의미다. 교육 기회가 제한된 지역일수록 잠들어 있는 인재가 많고, 이를 깨웠을 때 얻는 혁신의 증가폭도 커질 수 있다.

    기회의 평등은 성장의 인프라다
    계층 이동성을 높이는 정책은 흔히 분배정책으로 분류된다. 장학금, 공교육 투자, 지역대학 지원, 저소득층 학생을 위한 진로 프로그램은 이미 만들어진 부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로 다뤄지기 쉽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질문의 방향을 바꾼다. 기회를 넓히는 일은 부를 나누는 정책인 동시에 새로운 부와 아이디어를 만드는 정책일 수 있다.

    도로를 놓으면 사람과 상품이 이동하고, 통신망을 구축하면 정보가 흐른다. 교육과 계층 이동성은 재능이 이동하게 만드는 인프라다.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출생 배경에 막히지 않고 학교와 대학, 연구실과 기업으로 이동할 수 있어야 경제는 보유한 인적자본을 충분히 활용한다. 끊어진 계층 사다리는 개인의 상승을 막는 데 그치지 않고 아이디어가 생산 현장에 도달하는 길을 끊는다.

    정책의 초점도 단순한 대학 진학률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양질의 교육에 접근할 수 있는지, 지역에 따라 학교의 수준이 지나치게 벌어지지 않는지, 부모가 대학을 나오지 않은 학생도 진학과 취업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생활비 때문에 교육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대학 이후에는 연구 경험과 인턴십, 창업 자금, 전문 네트워크에 진입할 기회가 공평한지도 중요하다.

    지역 성장정책 역시 건물과 장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연구단지를 조성하고 실험실을 채우는 일과 함께 지역 학생이 그 공간에서 일할 수 있도록 긴 교육 경로를 만들어야 한다. 초·중등학교, 직업교육기관, 대학, 기업을 연결하고, 첫 세대 대학생에게 정보와 멘토를 제공하며, 실패 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안전망을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새 연구단지는 지역 주민과 분리된 섬이 되고 외부 인재의 이동에만 의존하게 된다.

    기업도 계층 이동성의 수혜자이자 참여자가 될 수 있다. 학벌과 경력의 좁은 기준에서 벗어난 채용, 유급 인턴십, 지역대학과의 공동 교육, 입사 후의 재훈련은 더 넓은 인재 풀을 혁신 과정에 연결한다. 다양한 배경의 사람이 참여하면 기존 조직이 당연하게 여긴 문제를 다르게 바라보고, 지금까지 외면받은 고객과 시장의 필요를 발견할 가능성도 커진다.

    유럽의 기회 지도와 특허 지도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면서도 날카롭다. 혁신의 반대말은 실패가 아니라 낭비일 수 있다. 태어난 가정 때문에 교육을 포기한 학생, 진로 정보를 얻지 못해 연구자의 길을 생각하지 못한 청년, 생활비 때문에 아이디어를 시험하지 못한 기술자는 통계에 발명가로 기록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특허와 세워지지 않은 기업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손실도 쉽게 잊힌다.

    혁신 경쟁에서 앞서려는 사회는 더 많은 천재가 태어나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이미 곳곳에 존재하는 재능이 부모의 학력과 주소, 소득을 넘어 움직일 수 있도록 길을 열어야 한다. 계층 사다리를 수리하는 일은 한 사람을 위로 올리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그 사람이 품고 있던 아이디어까지 세상으로 끌어올린다.

    Reference
    Nature, July 2026, Sarah McNamara, Guido Neidhofer and Patrick Lehnert, Intergenerational Mobility Fosters Innovation in Euro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