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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4월 5주차

BOOK SUMMARY


 인문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저자 투퀴디데스 (지은이), 박문재 (옮긴이)
출판 현대지성
출간 2026.01
2,500년 전, 고대 그리스 전쟁을 통해 인간 본성과 권력의 작동 원리를 철저히 해부한 불멸의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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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나이인 투키디데스는 펠로포네소스인과 아테나이인이 벌인 전쟁을 기록했다. 나는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집필을 시작했는데, 이 전쟁이 이전의 어떤 전쟁보다도 중대하고 더 오래 기억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판단한 까닭은 양측이 모두 철저히 준비한 채 전쟁에 임했을 뿐 아니라, 다른 헬렌인들 가운데 일부는 즉시 어느 한편에 가담하고, 일부는 어느 편에 설지 저울질하는 모습을 내가 직접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펠로포네소스"는 ""펠롭스의 반도""라는 뜻으로, 헬라스(고대 그리스) 남서부에 위치한 반도다. 펠롭스는 소아시아 리디아의 왕 탄탈로스의 아들로, 신들의 저주를 받은 인물이다. 그는 엘리스 지방 피사의 왕 오이노마오스의 딸 히포다메이아와 결혼하여 왕위를 계승하고 세력을 반도 전역으로 넓혔다.

펠로포네소스반도에는 여러 지방이 있다. 남동부에 라코니케 지방(스파르테, 즉 라케다이몬의 중심지), 남서부에 메세니아 지방, 중앙 동부에 아르고리스 지방, 중부에 아르카디아 지방, 북동부에 아카이아 지방, 북서부에 엘리스 지방이 있다.

펠로포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년)은 아테나이 동맹과 라케다이몬 동맹 간의 대규모 전쟁으로, 반도 내 도시국가들은 대체로 라케다이몬 동맹에, 헬라스 본토와 섬 지역 도시국가들은 아테나이 동맹에 속했다.

펠로포네소스반도는 육로로는 코린토스 지협을 통해 본토와 연결된다. 헬라스 본토 남쪽에는 아티케 지방과 중심 도시 아테나이가, 그 북쪽에는 보이오티아 지방이 있으며, 두 지방의 동쪽 바다에는 에우보이아섬이 있다. 본토 중부에는 포키스, 로크리스, 도리스 지방이 있으며, 서쪽에는 아이톨리아, 아카르나니아, 암필로키아 지방이 있고, 북쪽에는 테살리아 지방이 있다.

고대 헬렌인은 거주 지역이나 조상을 기준으로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펠로포네소스인"은 지역 기반, "헬렌인"은 혈통 기반의 명칭이다. 신화에 따르면, 헬렌은 제우스의 대홍수 이후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간 데우칼리온과 피라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으로, 그의 아들들은 각 부족의 시조가 되었다. 아이올로스는 아이올로스인, 크수토스의 아들 이온과 아카이오스는 각각 이온인과 아카이오스인, 도로스는 도로스인의 시조로 여겨진다. 투키디데스는 헬라스 본토, 그 식민지, 펠로포네소스에 거주하는 이들을 모두 "헬렌인"으로 지칭한다.

실제로 이 전쟁은 헬렌인뿐 아니라 일부 이민족들, 아니 거의 전 인류가 개입된 최대의 사변이었다. 오래전 일은 물론이고 비교적 최근의 사건조차 시간이 흘러 실상을 파악하기 힘들었지만, 나는 최대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증거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이 전쟁이 전무후무한 규모의 사건이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민족들"로 번역한 바르바로스는 헬렌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말을 사용하는 이들을 묘사할 때 쓴 의성어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야만인""으로 번역되지만, 이 책에서는 원래의 의미를 살려 "이민족"으로 옮겼다.

오늘날 헬라스라 불리는 이 땅에는 예로부터 정착해 살아온 원주민이 없었다. 오히려 부족들의 이동이 빈번했으며 먼저 이주해온 부족은 수적으로 우세한 새로운 부족이 들어와 압박을 가하면 주저 없이 정착지를 떠났음이 분명해 보인다. 교역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육로나 해로를 통한 활발한 교류도 없었다. 각자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며 생존에 필요한 만큼만 토지를 경작했기에 내다 팔 만한 잉여생산물도 없었다. 또한 성벽이 없어 늘 약탈의 위협에 노출되었고, 그날그날 필요한 음식은 어디서든 구할 수 있다고 여겨 정착지를 떠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 결과 도시들은 커지지 않았고, 그 힘도 미약했다.

"헬라스"는 원래 헬렌인의 시조 헬렌과 연관된 테살리아 지역의 명칭이었으나, 이후 헬렌인이 거주하는 땅 전체를 가리키는 명칭이 되었다. 고대 헬렌인은 자신들을 ""헬렌인"", 자신들의 땅을 ""헬라스""라 불렀지만, 로마인은 그라이키아(Graecia)라는 지역명을 헬라스 전체를 지칭하는 데 사용했고, 이 명칭이 영어의 그리스(Greece)로 이어졌다.

토지가 비옥한 지역은 주민이 자주 바뀌었다. 현재의 테살리아 지방, 보이오티아 지방, 그리고 아르카디아 지방을 제외한 펠로포네소스 내 가장 비옥한 지역들이 그러했다. 비옥한 지역에서는 몇몇 유력자들이 강한 세력을 형성하면서 파벌 싸움이 일어났고, 이는 부족 전체를 파멸로 이끌었을 뿐 아니라 외부 부족들에 의한 더 많은 위협을 초래했다. 반면 토지가 척박한 아티케 지방에서는 파벌 싸움이 벌어지지 않았기에 동일한 주민들이 대대로 살아왔다.

"테살리아 지방"은 펠로포네소스반도의 북쪽, 헬라스 본토 북부의 중앙에 위치한다. 북쪽으로는 마케도니아, 서쪽으로는 에피로스, 남쪽으로는 헬라스 본토 중부와 접한다. 비옥한 평야와 말 사육으로 유명하며, 매우 강력한 기병대를 보유했다. 미케네 문명 시대(기원전 1600-1100년)의 중심지 중 하나였으며, 헬렌인의 시조인 헬렌은 테살리아 지방 프티아의 왕이었다.

"보이오티아 지방"은 헬라스 본토 남부의 아티케 지방 북쪽에 위치하며, 헬리콘 산맥으로 인해 두 개의 평야로 나뉜다. 헬리콘산이 해풍을 막아주어 비옥한 토양을 갖추었다. 기원전 550년경 주요 도시국가 테바이들을 중심으로 보이오티아 동맹이 결성되었다. 연합정부 형태로 운영된 이 동맹은 펠로포네소스 전쟁 중 라케다이몬과 연합하여 아테나이에 맞섰다.

"아르카디아 지방"은 펠로포네소스반도 중앙의 고원지대로, 사방이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여 다른 지방들과 자연적으로 격리되었다.

"아티케 지방"은 도시국가 아테나이의 영토로, 헬라스 본토 남부에 위치한다. 기원전 508년 입법자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 이전까지 약 100개의 자치도시(""데모스"")로 구성되었으며, 개혁 이후 139개의 행정구역으로 재편되었다. 각 데모스는 직할도시 체제로 편입되었으나 상당한 자치권을 유지했으며, 시민권 등록, 세금 징수, 징집 등을 데모스 단위로 시행함으로써 아테나이 민주정의 기초를 놓았다.

이는 다른 지역들이 빈번한 이주로 인해 아티케 지방처럼 발전하여 강성해질 수 없었다는 나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증거다. 헬라스의 다른 지역에서 전쟁이나 파벌 싸움으로 쫓겨난 이들 중 가장 유력한 자들이 안전한 피난처를 찾아 아테나이로 망명하여 그곳의 시민이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아테나이의 인구는 오래전부터 크게 증가했으며, 아티케 지방만으로는 이들을 수용하기에 부족해지자, 이오니아 지방에 식민지를 개척하여 그곳으로 일부 주민을 이주시켰다.

"이오니아 지방"은 소아시아 서해안에 위치하며, "이오니아"는 ""이온인의 땅""을 뜻한다. 헬라스에서 가장 먼저 펠로포네소스 아카이아 지방에 정착한 부족은 아카이오스인(아카이아인)이고, 이어 이온인(이오니아인)이 아티케, 에우보이아, 키클라데스제도에도 정착했다. 기원전 1200-1100년경 도로스인의 남하로 일부 이온인이 밀려나 소아시아 서해안의 밀레토스, 에페소스, 사모스섬, 키오스섬 등에 정착했다. 이 지역을 "이오니아"라 부르게 되었으며, 이오니아 12개 도시가 ""이오니아 동맹""을 결성했다. 2;

아테나이와 아티케 사람은 원래 이온인으로, 이오니아에 식민지를 세우고 많은 이주민을 보냈다.

옛적에 헬라스에서 살던 사람들의 힘이 미약했다는 나의 확신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증거는, 트로이아 전쟁 이전에는 헬라스가 연합하여 활동했다는 어떤 증거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더욱이 내가 보기에는 당시에는 이 지역 전체가 헬라스로 불리지도 않았다. 데우칼리온의 아들 헬렌이 등장하기 전까지 헬라스라는 명칭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이 지역의 여러 곳은 그곳에 거주하던 부족의 이름으로 불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넓은 지역을 차지했던 펠라스고스인의 땅이라는 명칭이 가장 널리 사용되었다. 이후 헬렌과 그의 아들들이 프티오티스에서 강성해지면서 다른 도시국가의 요청에 따라 원군을 파병하는 일이 잦아졌고, 이러한 교류를 통해 다른 도시국가에 사는 사람들도 점차 헬렌인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명칭이 이 지역에 사는 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명칭으로 정착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트로이아 전쟁"은 기원전 12세기 소아시아 트로이아에서 헬라스 연합군과 트로이아 연합군 간에 벌어진 전쟁으로,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스』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전쟁은 스파르테 왕비 헬레네가 트로이아 왕자 파리스(알렉산드로스)에게 납치되며 시작된다. 헬레네의 구혼자였던 여러 도시국가의 왕과 영웅이 헬레네의 배우자에게 재난이 닥치면 돕기로 했던 이전의 맹세에 따라 연합군을 결성해 원정을 떠났고, 10년 전쟁 끝에 트로이아는 멸망했다. 『일리아스』는 이 전쟁을 배경으로 헬라스 신화와 영웅들, 그 가문의 흥망을 장엄하게 그려낸다.

"데우칼리온"은 제우스로부터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준 티탄족 프로메테우스의 아들이다. 그의 아들 "헬렌"은 테살리아 프티아의 왕으로, 헬렌의 세 아들이 네 부족의 시조가 되어 헬렌인 전체의 조상으로 여겨진다.

"펠라스고스인"의 시조 펠라스고스는 아르고스의 펠라스고스의 손자이자 포세이돈의 아들이다. 그는 형제들인 피티오스, 아카이오스와 함께 일부 펠라스고스인을 이끌고 아르고스에서 테살리아로 이주하여 펠라스기오티스, 프티오티스, 아카이아에 식민지를 세웠다.

"프티오티스"는 테살리아 지방 남동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헬렌인의 시조 헬렌이 다스렸던 프티아가 이곳의 일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가장 잘 증명해주는 인물이 호메로스다. 그는 트로이아 전쟁이 끝난 뒤 훨씬 후대에 태어났음에도, 그의 글 어디에서도 헬라스 전역에서 모여든 사람들을 헬렌인이라는 명칭으로 통칭하지 않았다. "호메로스"는 기원전 약 8세기의 인물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이 두 작품은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문학으로서 고대 헬라스 문학의 기초를 이루었다고 평가받는다. 단테는 『신곡』에서 그를 "모든 시인의 왕"이라 불렀다. 전승에 따르면 호메로스는 이오니아 출신의 맹인 음유시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생애를 다룬 명확한 역사적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며, 그가 실존 인물인지를 두고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아킬레우스"는 초기 헬렌인들의 거주지였던 프티오티스 지역 프티아의 왕 펠레우스의 아들로, 트로이아 전쟁의 대표적 영웅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와 헬라스 연합군 총사령관이자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 간의 갈등으로 시작해, 아킬레우스가 트로이아 총사령관 헥토르 왕자를 죽이는 장면으로 끝난다.

"다나오스인"은 펠로포네소스반도 북동부 아르고리스 지방의 아르고스에 거주하던 주민을 가리킨다. 이 지방에는 아르고스를 비롯해 미케네, 티린스 등 주요 왕국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들의 시조 다나오스는 이집트 왕 벨로스와 나일강의 신 나일로스의 딸 안키노에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깁토스의 형제다. 그는 벨로스로부터 리비에를 물려받았으나, 아이깁토스의 위협을 피해 조상의 땅 아르고스로 피신했다. 그가 왕 겔라노르와의 다툼에서 승리해 통치권을 얻은 이후로, 이 지역 사람들은 다나오스인이라 불리게 되었다.

"아르고스인"은 펠로포네소스반도 북동부 아르고스의 주민이다. 명칭은 아르고스 왕국의 건설자 아르고스에서 유래했는데, 그는 제우스와 니오베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니오베의 조부 이나코스는 아르고리스 지방 이나코스강의 신이자 아르고스의 초대 왕이었다. 이나코스는 포로네우스를, 포로네우스는 니오베를 낳았으며, 니오베의 아들 아르고스는 외조부 포로네우스로부터 왕국을 물려받아 아르고스 왕국으로 개명했다. 이후 통치권은 다나오스 왕가로 넘어갔다.

"아카이오스인"은 헬렌의 손자 아카이오스를 시조로 삼는 부족이다. 아카이오스의 아버지 크수토스는 테살리아의 이올코스에서 추방된 후 펠로포네소스 북부의 아이기알로스로 이주했다. 크수토스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형 이온은 아이기알로스 왕 셀리누스의 딸 헬리케와 혼인하여 왕위를 계승했고, 그곳 주민들은 이온의 이름에서 유래한 ""이온인""이라 불렸다.

아이기알로스는 훗날 ""아카이아""라 불리게 된다. 한편 아우 아카이오스는 아버지의 고향 테살리아로 돌아가 지역을 부흥시켰고, 그곳 주민들은 그의 이름에서 유래한 ""아카이오스인""이라 불렸다.그러므로 도시국가 간의 교류를 통해 헬렌인이라는 명칭을 얻었든, 아니면 후대에 이 명칭이 정착된 후 그렇게 불렸든 간에, 이 지역에서 살던 여러 부족은 트로이아 전쟁 이전에는 강성하지 않았고 서로 교류하지 않았기에 함께 이룩한 성과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집단을 이루어 바다를 건너 트로이아 원정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세월이 흐르면서 항해술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오래전에 미노스가 최초로 함대를 창설했다. 그는 오늘날 헬렌인의 바다로 불리는 해역의 대부분과 키클라데스제도를 장악했다. 이때 대부분의 섬에서 카르인을 축출하고 처음으로 식민지를 건설했으며, 자신의 아들들을 그곳의 통치자로 세웠다. 나아가 식민시들의 세금에서 나오는 수익을 보호하기 위해 바다에서 해적을 몰아내는 데도 최선을 다했다.

"미노스"는 크레테섬의 전설적인 왕으로, 제우스와 에우로페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라다만티스와 사르페돈의 형이다. 그는 다이달로스에게 명하여 미궁을 건설했다. 이곳에서 아테나이의 영웅 테세우스가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의 도움으로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퇴치했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제우스에게 통치술을 전수받은 미노스는 공정한 군주이자 입법자로 명성을 얻었고, 최초로 해군을 창설했다. 사후에는 라다만티스와 함께 지하세계의 세 재판관 중 한 명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헬렌인의 바다"(""헬레니케스 탈라사"")는 아이가이온해를 가리킨다. 신화에 따르면, 아테나이의 왕 아이게우스는 아들 테세우스가 크레테섬의 미노타우로스를 퇴치하는 데 성공하면 돌아올 때 흰 돛을 달기로 약속했으나, 승리하고도 검은 돛을 단 채 귀환하자 절망하여 바다에 투신했다. 이 일화로 인해 이 바다가 아이가이온해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 해역은 북쪽의 발칸반도, 동쪽의 소아시아, 남쪽의 크레테섬과 로도스섬, 서쪽의 헬라스 본토와 펠로포네소스반도에 둘러싸여 있으며, 트라케해와 크레테해를 포함한다. 2;

"카르인"은 키클라데스제도에 거주했던 비헬렌계 이민족으로, 소아시아 카리아 지방에서 이주했다. 이들은 시조의 이름을 따 ""카르인""이라 불렸다. 크레테 왕 미노스에게 축출되기 전까지 이 지역에서 해적 생활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호메로스는 이처럼 헬렌어를 쓰지 않는 이들을 가리켜 ""이민족""을 뜻하는 ""바르바로스""라 불렀다.

과거 헬렌인들과 해안이나 섬에 거주하던 이민족들 사이에 배를 이용한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이민족 가운데 가장 유력한 자들이 부를 축적하는 동시에 자신이 거느린 가난한 자들을 부양하기 위해 해적이 되어 약탈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벽이 없는 도시나 마을을 습격하여 약탈을 저질렀으며, 이러한 해적질은 그들의 주된 생계 수단이 되었다. 당시에는 이러한 행위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영예로운 일로 여겨졌다. 오늘날에도 일부 내륙 지역의 사람들은 해적질을 영예롭게 생각한다. 옛 시인들은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해적이오?"라고 묻곤 했는데, 이는 그 당시 해적질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으며, 누구도 이를 비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약탈 행위는 육지에서도 벌어졌다. 헬라스의 여러 지역, 예컨대 오졸리아 로크리스, 아이톨리아, 아카르나니아를 비롯한 내륙 지역의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과거의 생활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그들이 여전히 무기를 휴대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이 지역에 전해온 약탈을 하던 습관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옛날 헬라스 지역에서는 집에 울타리를 두르지 않았고 사람들 사이의 교류도 안전하지 않았기에 이민족들과 마찬가지로 무기를 지니고 다니는 것이 일반적인 습관이었다. 오늘날에도 여러 지역에서 옛 생활 방식을 유지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과거에는 그러한 생활 방식이 헬라스 전역에서 보편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처음으로 무기를 내려놓고 더욱 편안하고 사치스러운 생활 방식을 채택한 사람들은 아테나이인이었다. 아테나이의 부유한 노인들이 아마포 평상복$을 입고, 머리에 황금 메뚜기 모양의 장식을 두르는 사치를 버린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이러한 복장과 장식은 아테나이의 친족인 이오니아의 노인들 사이에서도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라케다이몬인"은 오늘날 ""스파르테인"" 또는 ""스파르타인""으로 알려진 사람들이다. 고대에는 시조 라케다이몬의 이름을 따라 ""라케다이몬인""이라 불렸다. 라케다이몬은 라코니케의 왕 에우로타스의 딸 스파르테와 혼인해 왕국을 물려받았고, 에우로타스 강변에 수도를 건설해 이를 ""스파르테""라 명명했다. 라케다이몬은 수도 스파르테를 중심으로 한 도시국가의 명칭이기도 하며, 투키디데스는 이 지역 사람들을 ""스파르테인""보다는 주로 ""라케다이몬인""이라 칭했다.

그리고 그 전투가 일어난 지 10년째 되는 해에 이 이민족은 헬라스를 정복하기 위해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왔다. 큰 위기에 직면하여 국력이 강한 라케다이몬이 헬라스 연합군을 이끌었고, 아테나이인은 메디아군이 다가오자 도시를 포기하기로 결심하고 함선에 올라 해군이 되었다. 헬라스가 연합하여 이민족을 물리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헬렌인들은 두 진영으로 나뉘었다. 한 진영은 메디아 왕에게 반기를 든 이들이었고, 다른 한 진영은 협조한 이들이었다. 헬라스는 곧 친아테나이 집단과 친라케다이몬 집단으로 나뉘었는데, 두 도시국가가 헬라스에서 최강대국이었기 때문이다. 아테나이는 바다에서, 라케다이몬은 육지에서 각각 최강이었다.

크세르크세스는 선왕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제2차 페르시스 전쟁(기원전 480-479년)을 일으켰다. 이에 라케다이몬이 주도하고 30개 도시국가가 참여한 헬라스 연합이 결성되어 라케다이몬이 지상군을, 아테나이가 해군을 지휘했다. 기원전 480년, 헬라스 연합 함대가 살라미스 해전에서 페르시스 대함대를 격파했다.

헬렌인들은 이처럼 두 진영으로 나뉘어 있으면서도 한동안은 헬라스 전체를 아우르는 연합을 유지했다. 그러나 라케다이몬과 아테나이인이 서로 불화하게 되면서 각자의 동맹국들을 이끌고 전쟁을 벌였다. 헬라스의 어느 도시국가 간에 분쟁이 일어나면, 다른 도시국가들도 어느 한 진영에 가담하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메디아인과의 전쟁이 발발한 때로부터 펠로포네소스 전쟁에 이르는 전 기간 동안, 아테나이와 라케다이몬은 때로는 전쟁을 벌이고 때로는 휴전하며, 가끔은 자신의 동맹국 중 배신한 도시국가와 전쟁을 치르면서, 위험을 수반한 실전 경험을 통해 전쟁을 철저히 준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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